교육이란 생각하는 과정을 가르쳐주는 훈련이다. 하나의 사물을 관찰하는 방법으로부터 한 가족 한 사회가 이뤄지는 과정과 사회와의 얽히고 설킨 관계를 이해시켜주는 수단이다. 그것은 더 나아가 한 나라와 다른 나라와의 관계,자연의 생성과 소멸을 일깨워주며 그 속에서 한 인간이 살아갈 이성과 덕목을 깨우쳐주는 과정이기도 하다.
교육의 이같은 일반적 의미에 입각한다면 대학이란 일반적인 생각의 틀을 전제로 해서 전문적인 사고를 훈련하는 과정이 될 것이고 초·중등교육은 그에앞서 일반적·보편적 사고의 틀을 정립해주는 교육과정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지상과제인 통일교육도 예외는 아니다. 통일은 분단된 민족의 재결합이며 이산된 가족의 재회를 말한다. 민족의 재결합과 이산가족의 재회는 근본적으로는 민족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할 때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앞으로의 통일교육을 종래 이념과 체제중심의 교육에서 한 차원 높여 민족동질성 회복에 역점을 두기로 한 것은 민족문제 해결의 본질에 한걸음 다가선 발전적인 정책의지라 할 수 있다.
갈수록 심화되는 남북한간 이질화현상이 민족문제 해결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지적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40여년간의 양극적인 체제와 이념은 제2세교육에 있어서도 극단적인 대결의식은 물론 본래 같은 민족으로서의 한뿌리 의식마저 희석시켜온 게 사실이었다. 무엇보다도 남북의 「대결」이라는 의식구조속에 상대를 인정하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해하지도 않았고 따라서 신뢰할 수도 없었다. 같은 민족 다른 쪽의 사람들이 머리에 뿔난 사람인 것처럼 여겨졌고 공산당은 죽어도 싫다는 극단적인 혐오의식을 잠재적으로 갖게 된 것이다. 동질성에 대한 부인이요 거부인 것이다.
남북한간 적대적인 대결체제 속에서의 우리 통일교육이 이성이나 이론의 측면보다 감성에 치우쳤던 것은 역시 북한의 남침으로 비롯된 민족전쟁의 산물이었다. 반공은 무조건적인 지상의 과제였으며 북의 주민을 공존공영의 동반자로 생각한다는 것은 꿈에서도 불가능했던 게 과거의 남북한 관계였다. 남북한은 다같이 전쟁을 겪으면서 상대방에 대한독선적인 불신과 상호 공포심을 키워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남북한간 그같은 비정상적 대결상태는 남북한이 일상적인 희로애락의 순박한 감정과 동기속에서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같은 동포들의 집단이라는 자명한 상식을 잊게 했다. 그것은 다시 말해 역사적이고 필연적인 운명공동체 의식의 상실이었다.
따라서 남북한의 대화와 교류가 체제와 이념 또는 정치 군사적인 분야에 앞서 학술·문화·언어·역사·종교분야에서 먼저 축적돼야 한다는 주장은 민족동질성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당위성을 갖는다.
우리가 북한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도 중요하다. 북한체제와 그 질서의 그릇됨은 그대로 보되 왜곡되게 알고 있던 부분을 바로잡아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동질성 회복의 통일교육이기도 한 것이다.
교육의 이같은 일반적 의미에 입각한다면 대학이란 일반적인 생각의 틀을 전제로 해서 전문적인 사고를 훈련하는 과정이 될 것이고 초·중등교육은 그에앞서 일반적·보편적 사고의 틀을 정립해주는 교육과정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의 지상과제인 통일교육도 예외는 아니다. 통일은 분단된 민족의 재결합이며 이산된 가족의 재회를 말한다. 민족의 재결합과 이산가족의 재회는 근본적으로는 민족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할 때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앞으로의 통일교육을 종래 이념과 체제중심의 교육에서 한 차원 높여 민족동질성 회복에 역점을 두기로 한 것은 민족문제 해결의 본질에 한걸음 다가선 발전적인 정책의지라 할 수 있다.
갈수록 심화되는 남북한간 이질화현상이 민족문제 해결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지적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40여년간의 양극적인 체제와 이념은 제2세교육에 있어서도 극단적인 대결의식은 물론 본래 같은 민족으로서의 한뿌리 의식마저 희석시켜온 게 사실이었다. 무엇보다도 남북의 「대결」이라는 의식구조속에 상대를 인정하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해하지도 않았고 따라서 신뢰할 수도 없었다. 같은 민족 다른 쪽의 사람들이 머리에 뿔난 사람인 것처럼 여겨졌고 공산당은 죽어도 싫다는 극단적인 혐오의식을 잠재적으로 갖게 된 것이다. 동질성에 대한 부인이요 거부인 것이다.
남북한간 적대적인 대결체제 속에서의 우리 통일교육이 이성이나 이론의 측면보다 감성에 치우쳤던 것은 역시 북한의 남침으로 비롯된 민족전쟁의 산물이었다. 반공은 무조건적인 지상의 과제였으며 북의 주민을 공존공영의 동반자로 생각한다는 것은 꿈에서도 불가능했던 게 과거의 남북한 관계였다. 남북한은 다같이 전쟁을 겪으면서 상대방에 대한독선적인 불신과 상호 공포심을 키워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남북한간 그같은 비정상적 대결상태는 남북한이 일상적인 희로애락의 순박한 감정과 동기속에서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같은 동포들의 집단이라는 자명한 상식을 잊게 했다. 그것은 다시 말해 역사적이고 필연적인 운명공동체 의식의 상실이었다.
따라서 남북한의 대화와 교류가 체제와 이념 또는 정치 군사적인 분야에 앞서 학술·문화·언어·역사·종교분야에서 먼저 축적돼야 한다는 주장은 민족동질성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당위성을 갖는다.
우리가 북한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도 중요하다. 북한체제와 그 질서의 그릇됨은 그대로 보되 왜곡되게 알고 있던 부분을 바로잡아줘야 한다. 그것이 바로 동질성 회복의 통일교육이기도 한 것이다.
1990-08-23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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