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 맛 안난다』 『세상살이 재미없다』는 말이 자주 들리는 요즘 세태다. 세상 돌아가는 꼴을 들여다볼라치면 그럴 만도 하다. 정국은 파행국회다,개헌설이다,야권통합이다,남북교류다,해서 온통 심란하고 어수선하다. 경제도 신나는 일이 별반 없다. 사회는 어떤가. 비리·부정,가축잔혹도살사건,쓰레기환경오염 등으로 어둡고 답답한 얘기들 뿐이다. 아름다운 뉴스는 어디에 숨어 있는 걸까. 거기에다 찜통더위는 왜 이다지도 극성인지. ◆그런데 소슬바람처럼 밖에서 들려오는 두가지 밝은 뉴스가 그나마 감아버린 눈을 번쩍 뜨게하고 닫힌 귀를 휑하니 뚫는다. 북경축구대회에 참가한 남북한선수들이 국제대회 출전사상 처음으로 경기와 관계없이 한데 어울려 식사를 하며 「동포애」를 격의없이 나누었다는 소식이 그 하나다. 비록 중국측의 주선이긴 했지만 이들은 축구외에도 고향얘기며 사람사는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고 한다. 옛날 같았으면 「어림없는 일」이다. ◆도쿄에서는 40여년간 반목과 질시로 얼룩져온 재일거류민단과 조총련이 만나 조국통일을 위해 무엇이든 힘닿는 데까지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고 한다. 휴전선 못지않게 두터웠던 두 단체간의 「단절의 벽」을 허물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비교적 하기 쉬운 일로서 북경아시안게임에 응원단을 보내 편가르지 않고 남북선수단을 합동응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들 낭보는 「민족대교류」와 「범민족대회」를 부르짖는,어쩌면 거창한 남북한의 화해제스처가 벽에 부닥쳐 있는 안타까움 속에서 전해져 우리의 가슴에 신선하고 짜릿하게 와 닿는다. 큰 것은 작은 것부터 시작되는 법. 이들의 만남들을 가리켜 「미니민족교류」 「미니민족대회」라 불러 모자람이 있을까. 폭염속에서 귀밑을 때리는 시원한 가을바람 같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 8·15 광복을 맞아 남북관계도 이처럼 조그마하나마 뜻있는 열매부터 맺었으면 싶다. 그래야만 세상은 그래도 살아볼 만한 게 아닐까.
1990-08-03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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