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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사먹고, 치과진료도 했지만 암호화폐만으론 ‘불편한 생존’

밥 사먹고, 치과진료도 했지만 암호화폐만으론 ‘불편한 생존’

이태권 기자
입력 2020-07-20 22:46
업데이트 2020-07-2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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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범죄를 쫓다] 본지 기자 코인으로 사흘 살아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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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는 투기수단일 뿐일까. 기자가 직접 암호화폐로 살아봤다. 원화(KRW) 20만원을 10만원어치 페이코인과 비트코인, 이더리움 각 5만원어치로 바꿔 지난 15~17일 사흘 동안 음식점, 카페, 편의점, 병원 등에서 사용한 ‘코인 사흘 생존기´다.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코인으로 결제하려면 먼저 거래소에서 매수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거래소 업비트에서 계좌를 개설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샀지만 그마저도 보이스피싱 방지 때문에 계좌 개설 후 사흘간은 쓸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 지갑 애플리케이션(앱)에서도 충전이 가능한 페이코인(pci)을 먼저 써 보기로 했다.

페이코인은 휴대폰 결제서비스로 더 많이 알려진 결제회사 다날이 발행하는 암호화폐다. 온·오프라인 11개 브랜드(가맹점 6만여개)에서 결제가 가능하다. 지난 15일 오전 10시 기준 시세는 1pci에 172.7원, 10만원으로 충전한 코인은 약 579pci였다. 여기에 앱 수수료 3%(3000원)를 더 내야 했다.

이날 점심 해결을 위해 페이코인 결제 가맹점인 서울 종로구 KFC 청계천점을 찾았다. 키오스크(무인계산대)에서 6800원짜리 햄버거 세트를 선택해 결제를 시도했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결제 수단 중 페이코인은 보이지 않았다. 기자 뒤로 줄이 길어지자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대기줄에서 이탈해 확인하니 KFC 자체 앱을 통한 주문만 pci 결제가 가능했다. 부랴부랴 앱을 설치해 회원 가입을 끝내니 그제야 결제창이 보였다. 그사이 코인 시세는 아침보다 떨어져 1pci에 171원이 됐다. 세트 가격은 약 39.7pci, 오전에 코인을 구매했을 때와 비교하면 0.4pci(약 70원) 정도 손해다. 소액이긴 하지만 시세 변동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페이코인 결제요? 바코드 보여 주세요.” 프랜차이즈 카페 ‘달콤커피’ 종로종각점에서도 4100원짜리 아이스아메리카노를 pci로 결제했다. 이번에는 대면 결제를 시도했다. 직원 김가영(24)씨는 익숙한 듯 계산대에서 바코드 리더기를 꺼내 들었다. 지문 인식으로 앱을 동작시키고 스마트폰 화면에 올라온 바코드를 누르면 해당 시점의 시세가 5분간 고정된 화면이 뜬다. ‘삑.’ 바코드를 찍어 결제를 마치기까지 30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사용 편의성 자체는 다른 간편결제 앱들에 뒤지지 않는 느낌이다.

16일에도 서울신문사 근처 씨유(CU) 등 편의점과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칫솔세트, 도시락, 책 등을 pci로 결제했다. 씨유에서는 결제 시 15% 상시 할인도 됐다. 하지만 점원들 대부분은 여전히 암호화폐 결제가 생소하다는 반응이었다. 씨유 시청광장점 직원 이재희(42)씨는 “여기서 일한 지 3년째인데 (암호화폐 결제는) 처음 해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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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연세파미에치과의원에서 진료비를 암호화폐로 결제하기 위해 병원장 배진형씨의 이더리움(ETH) 지갑주소 정보가 담긴 QR코드를 찍고 있다.
기자가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 연세파미에치과의원에서 진료비를 암호화폐로 결제하기 위해 병원장 배진형씨의 이더리움(ETH) 지갑주소 정보가 담긴 QR코드를 찍고 있다.
●“1만 2000원짜리 밥 먹었는데 헉, 수수료 9000원이나 붙어”
사용처 적고 코인마다 수수료 달라
일상 속 암호화폐 생활은 산 넘어 산

암호화폐의 ‘기축통화´인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결제는 결제처를 찾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17일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한 상점들을 알려주는 웹사이트 ‘코인맵’(coinmap.org) 지도를 확인하면 서울시 전체에서 76곳에 불과했다. 하지만 76곳 업장 전체에 기자가 직접 전화를 걸어 일일이 확인한 결과 8곳을 빼고는 대부분 폐업했거나 결제가 되지 않았다.

오전 11시 10분 신촌의 카레 전문점 ‘거북이의 주방’을 찾아 8000원짜리 덮밥을 시킨 뒤 비트코인 결제를 시도했다. 기자가 거래소 지갑에서 송금하려 하자 최소 송금액이 0.001BTC(약 1만 1000원)라는 알림이 떴다. 어쩔 수 없이 2000원짜리 음료수 두 캔을 더 시킨 뒤 0.0011BTC를 송금했다.

그런데 여기에 송금 수수료 0.0009BTC(약 9000원)가 추가로 붙었다. 거래소가 정액으로 정한 출금 수수료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셈이다. 결국 한 끼를 위해 수수료까지 총 2만 1000원을 썼다. 결제받은 돈을 바로 현금화하느냐는 질문에 식당 주인 김용구(32)씨는 “비트코인 시세가 더 오를 거라고 생각해 손님들이 결제한 코인을 현금화하지 않고 최대한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8시, 마포구의 ‘연세파미에치과’에서 스케일링 진료를 받았다. 원장 배진형(39)씨는 “이더리움 결제를 받기 시작한 지 2년 반이 지났지만 문의만 있을 뿐 실제 결제는 처음”이라며 신기해했다. 그는 병원 장부에 현금 결제로 쓰고 2만 800원어치의 이더리움 0.074ETH를 송금받았다. 송금 시간은 약 1분. 코인마다 수수료가 달라 이번에는 390원만 냈다. 배씨는 “마케팅 목적으로 시작한 건데 코인의 가격 변동성이 크고 고객들이 굳이 써야 할 만한 이점을 느끼기 어려운 것 같다”고 평가했다.

우리의 일상에서 암호화폐 결제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았다. 수시로 변하는 시세, 수십 분까지 걸리는 송금 시간과 비싼 수수료, 부족한 사용처가 그것이다. 그나마 대안은 간편결제 앱이지만 이 역시 가맹점이 턱없이 부족하다. 페이코인 김영일 사업전략팀장은 “공격적인 할인 마케팅으로 이용자 규모를 키우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미래라고 생각했던 암호화폐 생활은 ‘생존’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글 사진 이태권 기자 rights@seoul.co.kr


본 기획물은 한국 언론학회-SNU 팩트체크 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2020-07-21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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