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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상처 몸·마음에 새긴 생존자 “미수습자 눈에 선해”

세월호 상처 몸·마음에 새긴 생존자 “미수습자 눈에 선해”

입력 2017-03-24 15:33
업데이트 2017-03-24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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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바지의 의인’ 김동수씨·제주 대책위원장 오용선씨

“혁규는 세월호의 홀에서 바로 코앞에서 봤습니다. 즐겁게 뛰어놀던 그 모습, 선합니다.”

세월호 선체에 대한 인양작업이 진행돼 방송 화면으로나마 3년 만에 세월호를 다시 본 김동수(52)씨는 24일 미수습자들의 빠른 귀환을 바란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화물차 운전기사였던 김씨는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소방호스를 자신의 몸에 감아 학생들을 구조한 것이 알려져 ‘파란 바지의 의인’으로 불린다.

미수습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권혁규(당시 7세)군은 아버지 권재근(당시 51세·미수습)씨 등 가족과 함께 제주에서 귀농생활을 위해 세월호에 탑승했다 김씨와 마주쳤다.

김씨는 오랜 기간 바닷물에 부식되고 여기저기 상처가 난 세월호 선체를 보게 되자 죽음의 공포가 감돌던 당시 느낌이 전해져왔다.

차디찬 바다에서 숨져간 희생자들과 여전히 찾지 못한 미수습자들을 떠올리면서 죄책감이 든다고 고통스러워도 했다.

김씨는 세월호 사고 이후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자해하는 등 끔찍한 행동을 해 주변의 걱정을 사기도 했다.

김씨의 아내 김형숙(49)씨는 “남편은 정신적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매일같이 세월호 사고 당시를 떠올리며 여전히 세상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내 김씨는 “세월호 사고의 진상규명과 유가족에 대한 지원이 이뤄지더라도 확실한 증인인 생존자는 완전히 배제됐다고 여기며 섭섭해 하는 마음도 크다”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사고 후 제주도 세월호 화물차·생존자 대책위원장을 맡아 온 오용선(56)씨는 현재 서귀포시 건설현장에서 노동일을 하고 있다.

오씨도 사고 후 우울증 등에 시달리며 정신적 고통을 겪어왔다.

2014년 5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약물치료를 받았다.

오씨는 “현재는 약을 먹지 않고 버텨 어느 정도 정신적 고통을 이겨냈다. 새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날의 악몽이 잊히지 않는다.

화물기사로 여러 차례 여객선을 타며 전국 곳곳을 누볐지만, 지금은 배를 타는 것이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건설현장 일은 고되지만, 그날의 고통을 잊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선택한 일이다.

오씨는 “세월호 생존자들도 세월호 침몰사고의 피해자”라며 “화물차에 대한 보상이 이뤄지긴 했으나 장기간 이뤄지는 정신적 치료에 대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해 생존자들이 어려움에 부닥쳐 있다”고 하소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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