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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단식의 정치학…‘옥중단식’부터 ‘맞불단식’까지

다시 보는 단식의 정치학…‘옥중단식’부터 ‘맞불단식’까지

입력 2016-09-27 16:58
업데이트 2016-09-27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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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DJ, 각각 23일·13일 단식…참여정부 때 ‘대유행’

곡기를 끊는 단식은 정치인들이 ‘단골 메뉴’처럼 써먹는 투쟁방식이다. 목숨을 걸고 반드시 목적을 관철해내겠다는 ‘의지’를 내보이는 것은 단기간에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켜 출구없는 상황을 타개하는데 있어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 돼왔다.

단식투쟁의 ‘원조’는 민주화 투쟁의 두 거목(巨木)인 ‘양김(兩金)’이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1983년 23일에 걸쳐 전두환 정권에 맞서 먼저 단식을 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평민당 총재시절인 1990년 정치사찰 중단, 지방자치제 전면 시행 등을 요구하며 13일 동안 단식을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95년 YS의 ‘5공 청산’에 항의하며 안양교도소에서 ‘옥중 단식’에 돌입했다. 당시 전 전 대통령 측은 옥중 단식 기간이 28일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로부터 14년이 지난 2009년, 당시 친박연대 서청원 대표가 옥중 단식에 들어갔다. 공천 비리로 수감됐던 서 대표 역시 20여일 동안 단식했다고 측근들이 전했다.

정치인들의 단식투쟁은 노무현 정부(참여정부) 시절 ‘대유행기’를 맞았다. 이라크 파병, 대통령 탄핵 사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등 인화성이 큰 사안이 많았기 때문이다.

2003년 9월 민주당 김근태 고문의 시한부 단식을 시작으로 열린우리당 임종석 의원(2003년 10월, 이라크 파병 반대), 민주당 설훈 의원(2004년 3월, 노 대통령 탄핵 철회),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과 무소속 정진석 의원(2005년, 행복도시 건설) 등이 단식투쟁을 벌였다.

2007년에는 한미 FTA 협상을 놓고 민주노동당 의원 전원이 단식 스타트를 끊더니 김근태·천정배·임종인 의원이 불과 며칠 간격으로 단식농성에 들어가기도 했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의 최병렬 대표도 노 대통령의 특검법 거부 철회를 요구하며 2003년 단식농성을 했다. 그러자 열린우리당 김영대 노동위원장이 ‘맞불 단식’을 벌였다.

1998년 이기택 전 한나라당 총재대행의 단식이나 2013년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단식은 정권 차원의 ‘정치적 탄압’을 이유로 한 사례다.

박근혜 정부 들어선 2014년 8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이 ‘세월호특별법 협상’으로, 9월에는 같은 당 정청래 의원도 같은 이유로 단식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에 항의해 26일부터 단식에 돌입한 것은 헌정사에서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집권여당 대표가 단식투쟁을 하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사퇴를 촉구하며 ‘타도 대상’으로 지목한 이는 정세균 국회의장. 그러나 정 의장 역시 과거 두 차례 단식 경험이 있는 ‘선배’다.

정 의장은 민주당 개혁 소장파 의원 시절이던 2001년 9월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에 항의하며 단식했으며, 2009년 7월에는 민주당 대표로서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 처리 움직임에 맞서겠다며 단식에 들어갔다.

정치인들의 단식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거나, 투쟁 도중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거나, 단식 기간이 길어지면서 주위의 만류 등으로 20일을 넘긴 경우는 매우 드물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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