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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박(讀博) 육아일기] <2> 엄마들은 왜 ‘토토가’를 보고 울었나

[독박(讀博) 육아일기] <2> 엄마들은 왜 ‘토토가’를 보고 울었나

입력 2015-04-02 11:38
업데이트 2015-05-22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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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가’에 출연한 SES/ 사진=슈 블로그
‘토토가’에 출연한 SES/ 사진=슈 블로그
‘독박 육아’라는 말은 친정이나 시댁 등 보조 양육자가 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엄마들 사이에서 흔히 쓰이는 은어로, 육아의 책임을 ‘혼자 뒤집어 썼다’는 뜻이지요.

아무런 도움 없이 나홀로 육아를 하다 보니 세상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초보엄마의 눈으로 세상을 더 넓게 읽게 됐다는 뜻에서
‘독박(讀博) 육아’라고 제목을 지었습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몰라주는 육아맘들의 세계를 저의 경험을 통해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허백윤 기자는

2008년 8월 서울신문사에 입사해 2009년 2월부터 정치부 국회 출입기자로 민주당과 새누리당을 취재했습니다. 2013년 5월부터 온라인뉴스부에서 일하던 중 2013년 12월부터 출산휴가·육아휴직으로 15개월을 보내고 3월 11일 복귀했습니다.


춤을 추고 있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흥에 겨워 몸이 들썩이는데도 너무 슬펐다.

지난해 말 MBC ‘무한도전’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토가)’를 보던 내 모습이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지는 황당한 경험을 했기에 벌써 세 달이나 지났지만 다시 기억을 꺼내들었다.

방송이 끝난 뒤 어김 없이 ‘절친’ 육아 카페에 접속했다. 이게 웬 일, 울었다는 엄마들의 글로 도배가 돼 있었다. 물론 2000년대 전후반 학창시절을 보낸 많은 사람들이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추억에 젖으며 눈물을 훔쳤겠지만, 나와 엄마들의 눈물은 유독 가슴을 울렸다.

우리의 눈물샘을 자극한 건 다름아닌 그룹 SES의 멤버 슈였다. 한 때는 요정이었던 그가 벌써 세 아이의 엄마가 됐다. 최근 각종 육아 프로그램을 비롯해 광고나 화보 등에서 얼굴을 비치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내 눈에는 토토가 무대에서의 슈가 가장 신나고 들떠 보였다. 눈물을 글썽이며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이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육아휴직이 끝나갈 무렵, 그 때 내 마음은 불안함과 막막함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 과연 아기를 남의 손에 하루종일 맡기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1년 내내 달고 살았던 걱정이었지만 막상 발을 떼려고 하니 아득하기만 했다. 혹시나 아기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도 됐지만 무엇보다도 내 삶이 송두리째 바뀔 것 같아 두려움이 컸다.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고 일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시간이 더는 없을 것 같았고, 언제나 기준이 ‘나’였던 생활이 끝나버린 것 같아 엄청난 좌절감이 밀려왔다.

●”나도 꿈 많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나’도 없네요”

SES 노래를 들으며 가슴 설레던 중학생은 이 세상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꿈이 많았다.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이뤄질 줄 알았을 것이다.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인 것처럼 살 줄 알았을 것이다.

’토토가’가 방송되는 날 ‘I’m your girl’ 전주가 흘러 나오자마자 마치 중학생 그 때처럼 가슴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득 TV 화면에 반사된 내 모습이 보였다. 목이 쭈욱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아기를 안고 있는 꾀죄죄한 아줌마가 있었다. 그렇게 눈물이 쏟아졌다.

다른 엄마들의 눈물도 비슷했다. “육아에 지쳐 있는 엄마들의 눈물이었다”, “찬란했던 10대가 너무나 그리웠다”, “나도 꿈이 있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나조차도 없어진 것 같다”는 글들이 잇따랐다.

허백윤 기자의 ‘독박 육아일기’
허백윤 기자의 ‘독박 육아일기’


엄연히 직장이 있고, 그것도 중학생 때 꿈꾸던 직종의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불과 1년 만에 이토록 상실감을 느꼈는데, 더 많은 꿈을 포기하고 더 오래, 진짜로 단절이 된 엄마들은 어땠을까 생각하니 또 울컥했다.

평범하게 공부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에게 여성의 ‘일’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래서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결혼과 임신·출산으로 인해 일을 그만두는 여성이 이렇게 많은지 전혀 실감을 못했다. 우리 엄마 세대에나 그런 줄 알았다. 아기를 낳고 산후조리원에서 식사를 하면서 다른 엄마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으니,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그 뒤로 아기를 키우며 만나는 많은 엄마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내가 튀는 존재가 됐다. 임신한 몸으로 회사를 꿋꿋이 다녔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었고, 봐줄 사람도 없으면서 돌쟁이를 두고 복직을 결심한 아기 엄마는 흔치 않았다.

많은 엄마들이 육아에 전념하며 오롯이 아이의 일과에 맞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이의 스케줄에 따라 약속을 잡고, 오늘 아이에게 뭘 먹일까가 중요한 고민이었다. 아이가 어릴 때 엄마가 직접 키우고 나중에 다시 사회생활을 해야겠다는 바람은 기한도 없이 점점 늦춰지고 있었다. 어떤 엄마는 나에게 “도대체 아기를 남한테 맡기면서까지 일을 하려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단순히 내 자아실현을 위해서라고 답하려다 보니 너무 허황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기혼女 5명 중 1명꼴 ‘경력 단절’이 현실

5명 중 1명꼴로 결혼과 육아 등으로 직장을 포기한다는 게 ‘현실’이었는데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 15~54세 기혼여성 956만 1000명 가운데 결혼, 임신·출산, 육아, 자녀교육(초등학생) 등으로 인해 직장을 그만둔 ‘경력단절 여성’이 213만 9000명으로 22.4%를 차지했다.

일을 그만둔 사유는 결혼이 (41.6%)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육아(31.7%)와 임신·출산(22.1%) 등의 순이었는데 2013년 대비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은 9.7%나 늘었다. 임신·출산으로 인한 단절도 5.4% 늘었고 자녀교육으로 인한 단절은 무려 27.9%나 증가했다고 한다. 특히 절반 이상이 30대(52.2%)였고 이들 역시 육아(35.9%) 때문에 직장을 떠나야 했다.

이러한 통계를 매년 접했으면서도 나와는 별로 관계가 없는 일이겠거니 여겼던 건 무슨 오만함에서였을까. 결혼과 육아와 관계 없이 여성도 당연히 자기 일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물정도 모르고 책으로만 세상을 읽은, 앞서간 생각일 뿐이었다.

나에겐 직업이라는 게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게 아닌 그냥 나를 나타내는 그 자체였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는다는 내 모습을 한번도 상상하지 못했다.

자기애가 엄청나게 강했던 것도 아니지만 이런 순진하고 낭만적인 생각이 현실에 부딪혔을 때 혼란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하루하루 아기가 클수록 과연 일을 계속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횟수도 더 늘어갔다. 사실은 회사로 돌아온 지금도 과연 언제까지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어린 아이를 남에게 맡기고 나와서 내 일을 한다는 자체만으로 죄책감이 짓누른다. 아이만 키우는 전업맘들에 비해 엄청난 사치를 부리고 있는 것만 같다.

엄마가 된다는 것이 점점 ‘나’를 잊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엄마들에게는 항상 자신보다 아이가 우선이 돼야 한다. 아기를 낳고부터 내 이름 대신 ‘OO엄마’라는 이름이 더 많이 불리는 것처럼, SNS에 온통 아이 사진만 올리면서 내 존재를 알리는 것처럼. 육아를 할 수록 나는 사라지고 엄마만 커지는 것 같다.

다시 무대에 올랐던 슈는 그 순간 만큼은 다시 자신을 찾았기에 무척 행복해 보였다. 비록 하루였지만 아이들에게 해방돼서 가장 화려했던 때로 돌아간 모습에서 대리만족을 얻었다. 슈는 방송을 마친 뒤 자신의 블로그에 “엄마가 된 저에게도 꿈이 있었고 그 꿈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열심히 예쁘게 살겠다”는 글을 남겼다.

매일 고군분투하는 엄마들에게 이제 ‘꿈’이라는 단어는 낯설기까지 하다. 그래서 잠시나마 꿈을 이뤄 기뻐하는 슈를 보며 눈물이 쏟아졌는지도 모르겠다. 가슴 한 켠에 잊고 있던 나를 떠올리며 그리워했고, 어쩌면 희망도 품었을지 모른다. 언제 이뤄질지 기약은 없지만.

여러 생각과 감정이 겹쳤던 날이라 몇달이 지난 지금도 ‘토토가’를 보던 순간을 떠올리면 가슴이 아린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독박육아맘’으로서 진심으로 부러웠다. 촬영하는 동안 아이들을 봐줄 사람이 있었다는 것부터.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독박 육아’라는 말은 친정이나 시댁 등 보조 양육자가 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엄마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엄마들 사이에서 흔히 쓰이는 은어로, 육아의 책임을 ‘혼자 뒤집어 썼다’는 뜻이지요. 아무런 도움 없이 나홀로 육아를 하다 보니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지더군요. 그래서 세상을 더 넓게 읽게 됐다는 뜻에서 ‘독박(讀博) 육아’라고 제목을 지었습니다.

고작 1년 남짓의 경험이 몇 년씩 혼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 비하면 매우 민망하지만, 글을 쓸 기회가 있을 때 나누고 싶습니다. 아이를 갖기 전에는 몰랐던 일들, 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몰라주는 육아맘들의 세계를. 저의 강렬했던 지난 1년의 시간, 그리고 ‘독박 워킹맘’에 도전하는 지금의 시간들을 통해 풀어가 보고자 합니다.


※허백윤 기자는 2008년 8월 서울신문사에 입사해 2009년 2월부터 정치부 국회 출입기자로 민주당과 새누리당을 취재했습니다. 2013년 5월부터 온라인뉴스부에서 일하던 중 2013년 12월부터 출산휴가·육아휴직으로 15개월을 보내고 3월 11일 복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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