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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퍼인 듯, 댄서인 듯… 세상 향한 1000개의 ‘수어 부처님’[마음의 쉼자리-종교와 공간]

래퍼인 듯, 댄서인 듯… 세상 향한 1000개의 ‘수어 부처님’[마음의 쉼자리-종교와 공간]

손원천 기자
손원천 기자
입력 2024-03-22 00:38
업데이트 2024-03-28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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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경기 고양 금륜사 수어천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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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고양 금륜사의 법당에 탱화 대신 걸린 천불수어설법도 전경.“자기가 얻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남이 얻은 것을 부러워하지도 말라. 남이 얻은 것을 부러워하는 수행자는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한다”“거친 말을 하지 말라.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분노의 말은 고통이 된다. 그 보복이 네 몸에 돌아온다”
경기 고양 금륜사의 법당에 탱화 대신 걸린 천불수어설법도 전경.“자기가 얻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남이 얻은 것을 부러워하지도 말라. 남이 얻은 것을 부러워하는 수행자는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한다”“거친 말을 하지 말라.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분노의 말은 고통이 된다. 그 보복이 네 몸에 돌아온다”
여기 부처님의 그림이 있다. 안경을 쓴 채 윙크를 하고 터프하게 콧수염을 기르거나 래퍼와 같은 몸짓으로 뭔가를 표현하기도 한다. 이처럼 형식과 틀에 얽매이지 않은 부처님 그림이 모두 1000개다. 더 놀라운 건 이런 격의 없는 부처님의 그림이 주불전의 탱화 구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엄하기 그지없는 탱화만 보던 장삼이사에게 이는 이만저만 파격이 아니다.

천불(千佛)을 모신 절은 비교적 흔하다. 천불은 천체불(千體佛)의 약자로, 비슷한 크기와 모양의 불상을 수없이 배열한 조각이나 회화를 말한다. 어떤 중생이건 깨닫지 못할 자가 없다는, 이른바 천불사상을 표현한 것이다. 경기 고양의 금륜사도 천불을 모시고 있다. 한데 금륜사의 천불은 좀 다르다. 수어(手語)하는 천불이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수어로 청각장애인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개성 강한 몸짓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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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수어설법도’ 중 한 장면. 법구경 133편을 수어로 표현한 것이다. “거친 말을 하지 말라.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분노의 말은 고통이 된다. 그 보복이 네 몸에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천불수어설법도’ 중 한 장면. 법구경 133편을 수어로 표현한 것이다. “거친 말을 하지 말라.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분노의 말은 고통이 된다. 그 보복이 네 몸에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금륜사는 2010년에 문을 연 신생 도량이다. 위치와 모양새가 여느 절집과 많이 다르다. 차들이 내달리는 큰길가에 터를 잡은 것도 그렇고, 평범한 이층 양옥의 구조도 그렇다. 도시 외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든’에 적합한 자리지 절집이 들어설 자리는 아니다. 그래서 처음 접하는 이들은 생경한 느낌을 받는다. 좀더 솔직히 말하면 점집이라 오해받을 만한 외양이다.

금륜사를 개창한 이는 본각이란 법명의 비구니 스님이다. 본각 스님은 평소 “사찰이 높은 곳에 있어서는 안 되고, 동네 이웃집같이 편하게 자리해 잠깐 들러 밥 한 그릇 먹고 올 수 있고 편하게 차 한잔 마실 수 있는 공간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가 이전에 개창한 절집들이 가정집, 상가 등인 이유다. 현재 금륜사도 갈비를 파는 ‘가든’이었다고 한다. 육고기를 팔던 자리에 들어선 절집이라니, 수어하는 부처님만큼이나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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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불수어설법도’ 중 한 장면. 법구경 365편으로 “자기가 얻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남이 얻은 것을 부러워하지도 말라. 남이 얻은 것을 부러워하는 수행자는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한다”는 가르침이 담겼다.
‘천불수어설법도’ 중 한 장면. 법구경 365편으로 “자기가 얻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남이 얻은 것을 부러워하지도 말라. 남이 얻은 것을 부러워하는 수행자는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한다”는 가르침이 담겼다.
금륜사 천불도의 공식 명칭은 ‘천불수어설법도’다. 그림 속 부처님이 설법하고 있는 건 ‘법구경’이다. 가장 오래되고 널리 읽히는 불교 경전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법구경의 본래 이름은 ‘담마파다’이다. ‘담마’란 법, 진리라는 뜻이고 ‘파다’란 말씀을 의미한다. 부처님의 설법, ‘진리의 말씀’을 담은 경전이 법구경이다. 법구경은 모두 게송(부처님의 공덕이나 가르침을 찬탄하는 노래), 즉 시의 형식으로 이뤄져 있다. 423편의 게송 가운데 본각 스님이 100편을 추렸고, 이를 불교 미술가 이호신 작가가 불화로 표현했다.

천불도는 닥종이에 수묵과 채색으로 그린 부처님 그림 10점이 한 묶음이다. 예를 들면 “자기가 얻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남이 얻은 것을 부러워하지도 말라”는 법구경 게송을 10점의 부처님 수어 불화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 불화 묶음 100개가 모여 총 1000점의 천불만다라로 탄생한 것이다. 천불만다라 외에도 석가모니 고행상과 석굴암 부처님, 세계 각지의 문화유산 불화도 함께 만날 수 있다.

금륜사는 장애인뿐 아니라 이동 약자들에게 ‘열린’ 사찰이자 환경을 중시하는 녹색 사찰이다. 출입구 쪽 턱과 홈이 있는 부분에 간이 철판 받침대를 대 휠체어도 불편 없이 이동할 수 있게 했고, 2층 법당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등 편의시설도 조성했다. 일회용기 사용을 줄이는 등 환경 친화적인 노력도 실천해 불교환경연대가 ‘녹색사찰 1호’로 지정하기도 했다. 서오릉 맞은편에 있다. 누구나 무시로 드나들 수 있다.

글·사진 손원천 선임기자
2024-03-22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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