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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시대] 지방은 의료 불모지를 탈출하고 싶다

[지방시대] 지방은 의료 불모지를 탈출하고 싶다

설정욱 기자
설정욱 기자
입력 2024-03-08 00:35
업데이트 2024-03-08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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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의료파업으로 온 세상이 뒤숭숭하다. 의정 갈등이 생각보다 크고, 장기전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의료파업은 대형병원이 밀집한 서울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비수도권에서 관심이 더 크다. 의료 낙후 지역에선 “의료계가 공공의대를 반대하더니 2000명 증원이라는 폭탄을 맞았다”고 비꼬는 목소리도 나온다.

비수도권에선 오랫동안 의료인력 확보를 부르짖었다. 지역 의대를 나와도 수도권으로 가버리기 일쑤다. 취업을 위해 타지로 떠나는 건 일반 직장인과 다를 게 없다. 농촌 의료원은 일반인이 상상도 못 할 연봉을 제시해도 의사를 구하지 못해 안달이다. 고액 연봉과 별도로 숙소를 마련해 준다고 해도 의사들의 관심을 못 끈다. 수도권에서도 충분히 넉넉한 월급에 좋은 집을 살 수 있는 의사들이 굳이 시골로 내려오지 않으려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된다. 그렇다면 의대 입학 때부터 조건을 달면 어떨까. 출신 대학의 지역에서 일정 기간이라도 근무하게 만드는 것이다.

국립의학전문대학원 설립과 지역의사제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지역의사제는 전국 의대 신입생을 선발할 때 비수도권 의료 취약지에서 일정 기간 근무할 정원을 별도로 뽑는 제도이고, 국립의학전문대는 지방 공공의료기관에서 10년간 의무적으로 진료할 석·박사급 의사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의사단체가 의사의 직업 선택의 자유 침해 등을 이유로 반대하면서 해당 법안은 현재 국회에서 잠들어 있다. 사실상 정치권 관심에서 멀어졌다. 현재 관심은 의대 증원에만 쏠렸고 정작 핵심인 의사를 지역에 어떻게 안착시킬 것인지는 후순위로 밀려났다.

열악한 지역 의료 인프라는 단순 의료계에 국한되지 않고 지방소멸을 앞당기는 단초가 될 수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해 발표한 ‘2023 올해의 이슈’를 보면 지방소멸 위기의 이면에는 지역 의료인프라의 부실 문제가 원인이자 결과로 꼽혔다. 지역 쇠락과 의료인프라 붕괴는 상호작용하며 악순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진료를 위해 타지로 이동함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크다고 분석했다.

정치권은 이번에 의대 정원을 늘리려는 이유를 다시 한번 곱씹어 봐야 한다. 증원 외에 다른 대책 없이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하다. 늘어난 의사들을 필수 의료와 지역에 안착시키는 장치를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의료계도 의대 증원을 바라는 민심이 단순히 의사들이 돈을 많이 벌어서, 질투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구급차 뺑뺑이나 농촌 주민들이 아파도 병원에 못 가는 일이 없도록 지역에 폭넓은 의료 혜택을 제공하는 게 의사 수를 늘리려는 이유다.

이번 의료 파업에 많은 이들이 직간접적으로 상처 입고, 대학은 분열 위기까지 처했다. 증원에 성공한다 한들 지역에 의사가 없는 한 지방 의료 붕괴는 막지 못한다. 어렵게 시작한 의대 증원이 의료 사각지대 해소라는 결실을 맺어야 하지 않을까.

설정욱 전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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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욱 전국부 기자
설정욱 전국부 기자
2024-03-08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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