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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뒤바꾼 물질, 미래도 뒤바꿀 물질

세상을 뒤바꾼 물질, 미래도 뒤바꿀 물질

안동환 기자
안동환 기자
입력 2024-03-08 00:33
업데이트 2024-03-08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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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 세계
에드 콘웨이 지음/이종인 옮김
인플루엔셜/584쪽/2만 9800원

흔한 물질이 경제·문명에 영향
英 저널리스트 세계 곳곳 취재

모래·소금·철·구리·석유·리튬
최첨단 기술 문명 만든 6가지
中, 반도체 패권 못 잡은 것도
테슬라 이차전지도 ‘물질’ 때문
디지털 경제 역시 물질로 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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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규모의 노천 구리 광산인 칠레 추키카마타 전경. 구리 1t을 생산하는 데 13만ℓ의 물을 소비하는 이 광산에서 매년 65만t의 구리가 채굴된다.  인플루엔셜 제공
세계 최대 규모의 노천 구리 광산인 칠레 추키카마타 전경. 구리 1t을 생산하는 데 13만ℓ의 물을 소비하는 이 광산에서 매년 65만t의 구리가 채굴된다.
인플루엔셜 제공
중국이 한국과 대만처럼 최첨단 반도체를 만들 수 있을까. 답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이다. 바로 ‘모래’ 때문이다. 이산화규소나 석영으로 알려진 모래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흔한 물질이다. 하지만 그 모래가 실리콘칩으로 바뀌는 거대한 테크놀로지 전쟁에서 중국은 패권을 잡지 못했다.

반도체에 쓰이는 순도 99.999999 9% 폴리실리콘을 만들 수 있는 고순도 석영이 생산되는 장소는 전 세계 단 한 곳뿐이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마을 스프루스파인 외곽에 있는 광산은 군사시설 버금가는 극비 시설이다. 이 광산에서 채취한 석영은 세척과 분쇄·정제 과정을 거쳐 실리콘 웨이퍼 제조에 필요한 불순물 없는 ‘초순수 모래’가 된다. 과학이 예술의 경지가 되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고순도 석영 없이는 반도체 공정의 핵심인 ‘초크랄스키’ 도가니가 존재할 수 없고 웨이퍼도 만들 수 없다. 중국이 수십 년간 스프루스파인의 석영을 대체하기 위해 땅속을 뒤졌지만 실패했다. 광산 관계자는 “누군가 농약을 가득 싣고 스프루스파인 광산에 살포한다면 반년 이내 전 세계 반도체 생산이 끝장날 것”이라고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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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황금’으로 불리는 칠레의 아타카마 소금사막.  인플루엔셜 제공
‘하얀 황금’으로 불리는 칠레의 아타카마 소금사막.
인플루엔셜 제공
영국 저널리스트 에드 콘웨이는 ‘물질의 세계’에서 “중국이 대만을 침략해 TSMC의 반도체 공장들을 확보해도 반도체 패권을 장악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있는 미국이 자국의 고순도 석영을 공급할 리 없기 때문이다.

그가 세계 곳곳의 광산과 칠레 소금사막 등을 현장 취재해 쓴 이 책은 모래·소금·철·구리·석유·리튬 등 최첨단 기술 문명을 만든 여섯 가지 물질의 세계를 생생하게 그려 낸다. 인공지능(AI)과 메타버스 등 디지털경제가 지배하는 시대에 저자가 물질세계의 경제로 시선을 돌린 이유는 단 하나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이 물질들에 세계 경제와 문명에 치명적인 혼란과 불안정을 일으킬 힘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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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부터 이어진 ‘1만년의 기술’로 불리는 유리 제조부터 반도체, 도시 마천루의 재료인 콘크리트도 모래에서 나온다. 소금이 없다면 식량의 대량생산이 불가능하고, 코로나19 백신 같은 의약품도 만들 수 없다. 구리에서 전력망이 탄생했고, 칠레 아타카마 소금사막에서 정제된 리튬이 테슬라의 기가팩토리에서 이차전지가 된다. 500쪽이 넘는 책은 과학과 역사, 지정학적 단층선을 넘나들며 땅속 물질이 움직여 온 땅 위의 역사를 장대한 서사로 펼쳐 낸다.

현대 문명은 물질을 사용하는 ‘소비자 문명’이다. 스마트폰 1대마다 약 6g의 구리가 들어 있다. 부유한 국가는 1인당 평생 15t의 철을 소비한다. 2019년 한 해 채굴된 광물량이 인류 초기부터 1950년까지 캐낸 총량보다 더 많다. 저자가 “이들 물질이 없는 현대 문명은 상상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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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튬 추출을 위해 소금 용액을 증발시키는 장면. 아타카마의 리튬은 세계 각국 공장에서 양극재와 혼합된 후 미국 네바다주의 테슬라 기가팩토리에서 전기차 배터리로 제조된다. 인플루엔셜 제공
리튬 추출을 위해 소금 용액을 증발시키는 장면. 아타카마의 리튬은 세계 각국 공장에서 양극재와 혼합된 후 미국 네바다주의 테슬라 기가팩토리에서 전기차 배터리로 제조된다.
인플루엔셜 제공
채굴과 가공 처리 과정이 자동화되면서 환경 비용의 증가에도 광물은 더 저렴하게 제공된다. 리튬 배터리 가격은 1991년 대비 97% 싸졌고, 태양광 모듈은 40년 전보다 500배 하락했다. 제조사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득이지만 물질 의존도는 훨씬 더 커졌다.

저자는 경제성장을 위한 에너지 소비와 전 세계 탈탄소화 목표가 충돌 직전이라고 진단한다.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제로 수준으로 낮추려면 또 다른 자원 착취와 환경 오염이 불가피하다.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려면 핵심 물질인 구리를 지난 5000년간 채굴한 양보다 더 많이 캐야 한다.

디지털경제는 물질세계의 지지와 희생으로 작동한다. “앞으로 수년간 인류가 평탄치 않은 도전의 시기를 보낼 것”이라고 예견하는 저자가 찾아낸 미래의 실마리도 ‘물질세계에 대한 인류의 새로운 상상력’이다.
안동환 전문기자
2024-03-0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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