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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착역 다다른 ‘지하철 1호선’ 그래도 학전은 계속 달린다

종착역 다다른 ‘지하철 1호선’ 그래도 학전은 계속 달린다

류재민 기자
류재민 기자
입력 2024-01-02 06:58
업데이트 2024-01-02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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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1호선’ 공연 사진. 학전 제공
‘지하철 1호선’ 공연 사진. 학전 제공
1994년 초연부터 총 4257회 운영하며 73만명이 넘는 누적 관객을 태우고 서울역과 청량리역을 부지런히 오간 ‘지하철 1호선’이 마침내 종착역에 다다랐다. 비록 지하철은 2023년을 끝으로 멈췄지만 학전은 계속 달릴 예정이다.

대학로를 대표하는 소극장 학전의 대표작인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지난달 31일을 끝으로 29년 역사의 막을 내렸다. 지난해 11월 개막 소식과 함께 김민기 학전 대표의 건강 문제와 예산 부족으로 운영을 중단한다고 알려지면서 마지막을 보기 위해 수많은 관객이 찾은 작품이다.

원작은 독일 그립스 극단의 ‘Linie 1’. 김 대표가 이를 한국적 언어로 번안하고 각색해 1980년대 베를린을 1998년의 서울로 옮겨와 IMF 이후 한국 사회를 풍자했다. 백두산에서 풋사랑을 나눈 한국남자 제비를 찾아 중국에서 서울로 온 연변처녀 선녀가 하루 동안 지하철 1호선과 그 주변에서 부딪치고 만나는 서울 사람들의 모습을 웃음과 해학으로 그렸다. 지하철이라는 공간 속 다양한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당대 서울의 이면을 사실적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제비가 건네준 주소와 사진만을 의지해 이른 아침 서울역에 도착한 선녀는 그가 알려준 청량리 588을 겨우 찾아가지만 그곳은 사창가다. 선녀는 그곳에서 열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운동권 출신의 안경, 그를 사모하는 창녀 걸레, 혼혈고아 철수 그리고 몇몇 창녀를 만난다. 제비의 아이를 임신한 선녀를 불쌍히 여긴 철수는 제비를 찾아줄 테니 서울역 곰보할매의 포장마차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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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전 제공
학전 제공
선녀가 오가는 세계가 그리 밝지만은 않다. 먼저 내린 서울역은 노숙인들의 세상, 나중에 내린 청량리역은 창녀들의 세상이다. 청량리에서 서울역으로 돌아오지만 사이비 교주, 자해 공갈범, 잡상인, 가출소녀 등 불운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어진다.

어떻게든 희망이 찾아올까 싶지만 안경이 고결한 사회운동을 하던 지식인이란 환상이 깨진 걸레가 지하철에 뛰어들어 목숨을 잃고, 제비를 겨우 만난 선녀는 또다시 버림받는 등 우울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절망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주는 건 결국 다른 누군가의 연대임을 ‘지하철 1호선’은 일깨운다.

어떻게 보면 요즘 시대 인권 감성과 맞지 않는 작품이지만 거칠었던 당대의 감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배우 설경구, 김윤석, 황정민, 장현성, 조승우 등 이 무대를 거쳐 성장한 배우들 못지않게 마지막 시즌 공연에 나선 배우들의 열연도 작품 보는 시간이 아깝지 않게 했다. 학전이 마지막이란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찌감치 매진됐는데 배우들은 관객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고 공연이 끝난 후에는 먼저 계단으로 나가 관객들에게 일일이 인사하는 정성으로 감동을 안겼다.

‘지하철 1호선’은 김 대표가 “이번에 학전에서 열리는 공연이 마지막 ‘지하철 1호선’이 될 것”이라고 밝힌 터라 다시 돌아오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비록 ‘지하철 1호선’은 이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멈췄지만 모두가 지키고자 했던 학전은 다행히도 계속 달릴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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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전 소극장. 연합뉴스
학전 소극장. 연합뉴스
학전은 ‘아침이슬’, ‘상록수’ 등의 명곡을 만든 김 대표가 1991년 3월 15일 대학로에 문을 열어 대중음악 공연뿐 아니라 자체 제작 뮤지컬을 비롯한 정극 중심의 작품을 선보이며 대학로 소극장 문화를 대표한 공간이었다. 가수 김광석이 1996년 세상을 떠나기 전 1000회 공연을 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경영난과 김 대표의 암 투병으로 운영이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본사가 전남 나주에 있어 대학로에 운영할 창작 공간이 필요했던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공연장을 이곳저곳 알아보다가 학전과 손을 잡게 됐다. 향후 공간을 재정비해 어린이·청소년 극장이나 가수들 공연무대로 활용할 예정이다.

지난달 28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서울 서대문구 모두예술극장에서 학전에 대해 “청소년극이나 가수들 무대로 만들어달라는 김민기 선생의 말씀도 있었다. 학전을 이끌어온 분의 의향을 존중하도록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운영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다만 기존 학전 직원들은 전부 그대로 일하지 않고 팀장급 일부만 남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전은 기존에 계획했던 ‘김광석 노래상 경연대회’와 어린이극 ‘고추장 떡볶이’, 학전 출신 예술인들의 ‘학전 어게인 콘서트’ 등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후에는 새로운 공연들이 학전의 명성을 이어간다.
류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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