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금천구 문해교실 마지막 수업
‘백점 못 놓쳐’ 긴장감 흐른 받아쓰기
어려운 형편에 포기한 공부 재도전
“받침도 척척…문자 소통에 행복”
성인 학력 인증을 위한 서울 금천구의 ‘차이나는 문해교실’에 참여해 일년간 한글과 수학 등을 배운 학생들. 왼쪽부터 이봉순씨, 오영분씨, 최명순씨. 2023.12.25 금천구 제공
6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난 최명순(71)씨는 엄마의 이 한마디에 다니던 학교를 한 달 만에 관뒀다. “살면서 뭘 모르니까 답답했죠. 그나마 이름은 안 잊어버리려고 몇 번씩 쓰기만 했어요.” 서른세 살 되던 해, 지방에 목수 일을 하러 남편이 집을 비운 새 영등포시장 앞 검정고시 학원을 찾아갔다. 6만원을 내고 한 달간 하루 국어 한 시간, 수학 한 시간을 배우는 그 시간이 좋았지만 어려운 형편에 공부를 계속할 수는 없었다.
안정되면 꼭 공부할 것이라는 결심은 2017년 문해교실에 입학하면서 실현됐다. 1년을 꼬박 다녀 초등학교 졸업장을 땄다. 뇌병변 수술로 불편한 왼손과 걸음걸이는 장애물도 아니었다. “이대로 주저앉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아프거나 말거나 공부하러 가는 게 좋았거든요. 글 쓰는 시간이 제일 행복합니다.”
지난 19일 서울 금천구 ‘차이나는 문해교실’에서 학생들이 이희원(왼쪽 두 번째) 강사와 함께 한글 공부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오영분씨, 이 강사, 최명순씨, 이봉순씨. 2023.12.25 금천구 제공
이희원 강사는 할머니들이 구분하기 어려워하는 ‘어’와 ‘워’, ‘이’와 ‘위’의 차이를 여러 예시를 들어 설명했다. “귀저기 아니고 기저귀가 맞아요. 큰 소리로 따라 읽어야 머릿속으로 들어가요.” 만학도들은 참새처럼 교사의 말을 따라 했다. 받아쓰기 시간에는 긴장감마저 흘렀다. 한 문제도 틀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었다. 100점을 맞은 한 할머니는 아이처럼 팔짝 뛰며 기뻐했다.
지난 19일 서울 금천구 ‘차이나는 문해교실’에서 학생들이 이희원(왼쪽 세 번째) 강사와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봉순씨, 최명순씨, 이 강사, 오영분씨. 2023.12.25 금천구 제공
문해교실 최연소 학생인 이봉순(62)씨는 남다른 습득력으로 같은 반 친구들의 부러움을 산다. “어릴 때 아파서 학교를 많이 빠졌어요. 아들 소개로 한글 교실에 다니면서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서 서울특별시 평생교육진흥원장상을 수상한 이봉순씨의 시화 ‘받침이 틀렸어’. 휴대전화 문자를 쓸 때마다 맞춤법이 틀려서 부끄러웠는데 문해교실을 다니면서 받침 있는 글자도 자신 있게 쓸 수 있게 됐다는 내용을 담았다. 2023.12.25 금천구 제공
이들의 새해 목표는 ‘디지털 정복’이다. 카페 키오스크에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해 보는 게 소망이다. “구청에서 스마트폰 사용법도 가르쳐 준대요. 그것도 배워야죠. 디지털 시대잖아요. 영어도 더 배우고 한글 맞춤법도 완벽하게 익혀야죠.” 오씨의 야심만만한 새해 계획이다.
오달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