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냉전시대 ‘죽의 장막’ 걷어 낸 ‘외교의 전설’

냉전시대 ‘죽의 장막’ 걷어 낸 ‘외교의 전설’

임병선 기자
입력 2023-12-01 01:55
업데이트 2023-12-01 01:55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키신저 전 美국무장관 별세

10대 때 히틀러 박해 피해 美 이주
‘핑퐁외교’로 미중 수교 성사 주역
미소 ‘전략무기 제한협정’ 이끌어
베트남전 종전 이후 노벨평화상
일각에선 ‘전쟁범죄 배후’ 비난도
올해 100세 때 中 100번째 방문
시진핑 “中인민의 라오펑유” 조전


이미지 확대
탈냉전으로 나아가는 세계 질서를 짰다는 평가를 듣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핑퐁외교’(1971년)를 시작으로 중국과 교류 물꼬를 트기 시작해 미중의 공식 수교(1979년)도 이끌어 냈다. 키신저(오른쪽) 전 장관이 1973년 11월 24일 중국 베이징을 찾아 마오쩌둥 주석을 만나는 장면. AFP 연합뉴스
탈냉전으로 나아가는 세계 질서를 짰다는 평가를 듣는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핑퐁외교’(1971년)를 시작으로 중국과 교류 물꼬를 트기 시작해 미중의 공식 수교(1979년)도 이끌어 냈다. 키신저(오른쪽) 전 장관이 1973년 11월 24일 중국 베이징을 찾아 마오쩌둥 주석을 만나는 장면.
AFP 연합뉴스
“미국에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 오직 국익만이 존재할 뿐”이란 발언으로 유명했던 미국의 국제정치학자이자 외교관이며 행정가인 헨리 키신저가 29일(현지시간) 코네티컷주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1923년 5월 독일 바이에른주에서 태어난 그는 열다섯 살 때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1968년 리처드 닉슨이 대통령이 된 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되면서 그의 외교 행보는 시작됐다.

그는 도덕성을 따지지 않는 현실주의 정책을 펼쳐 ‘죽의 장막’을 걷어 내고 공산 진영과의 데탕트(긴장완화)를 성사시켰다. 1971년 미국 탁구팀이 중국을 찾아 ‘핑퐁외교’로 교류의 물꼬를 텄는데 고인의 아이디어였다. 이듬해 닉슨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 주석과 역사적인 만남을 갖고 ‘상하이 코뮈니케’에 서명해 1979년 수교의 발판을 마련했다.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브렌트 스코크로프트와 함께 냉전 시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3대 거두로 꼽혔다. 물론 인지도에서는 고인이 가장 앞섰다.

닉슨 정부에 이어 제럴드 포드 정부 시절 중요 관료였으며 1970년대 미국의 외교 정책을 거의 혼자서 주물렀다. 정의나 감정에 치우친 판단보다 국익을 우선했지만 부정적 결과를 낳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피노체트 칠레 군사독재 정부를 용인한 일이다.

197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으나 역대 수상자 가운데 가장 격렬하고 오래가는 논란에 휩싸였다. 베트남 전쟁을 끝내기 위해 프랑스에서 평화 협상이 진행 중이었는데 공산주의 세력을 막아야 한다며 남베트남에 더 많은 군사원조를 하면서 결국 전쟁을 더 길게 끌었다.

영국계 미국 언론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냉전 시대 미국이 저지른 온갖 더러운 행위의 배후로 지목하며 그를 전쟁 범죄자로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지 확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야 정치인이던 1973년 한국 중앙정보부가 그를 납치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키신저 당시 국무장관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별한 친분을 갖고 있던 두 사람은 1998년 9월 5일 청와대에서 만났다. 서울신문 DB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야 정치인이던 1973년 한국 중앙정보부가 그를 납치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키신저 당시 국무장관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별한 친분을 갖고 있던 두 사람은 1998년 9월 5일 청와대에서 만났다.
서울신문 DB
닉슨 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번갈아 지냈는데 1973~1975년에는 두 직책을 혼자 맡았다. 외교 정책의 전권을 쥐며 미국과 소련의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을 이끌었고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주도했다. 아들 데이비드가 지난 5월 25일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그는 장수의 첩경으로 알려진 소식이나 채식을 하지 않았다. 독일 소시지와 오스트리아식 돈가스인 슈니첼을 즐겼다. 스포츠는 직접 하지 않았고 관객으로만 즐겼다고 한다.

좋지 않은 생활 습관에도 키신저가 정신적, 육체적 활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이었다. 95세 때부터 인공지능(AI)에 관심을 기울여 AI와 관련된 책을 두 권 썼고 정파에 관계없이 여러 정치인들과 교류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여파로 독일에서 하마스를 지지하는 시위가 열리자 독일 난민 정책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등 세상사에 눈과 귀를 열어 놓고 있었다.

뉴욕타임스(NYT)는 “냉전의 역사를 조형한 인물”이라며 “전후 가장 강력한 국무장관으로서 그의 업적은 추앙과 매도를 동시에 받는 복합적 유산”이라고 평가했다. WP는 “독일식 억양, 예리한 재치, 올빼미 같은 외모 및 영화배우들과의 데이트로 그는 절제로 일관한 전임자들과 극명한 대조를 보이며 전 세계의 인정을 받았다”면서 “그가 국무장관에 임명됐을 당시 갤럽 조사에서 그는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선정됐다”고 전했다.

지난 7월 20일에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왕이 외교부장 겸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을 만나는 등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분주한 나날을 보냈다. 시 주석은 그의 100세 생일과 함께 중국을 100번째 방문한 것을 짚어 “두 개의 100이 합쳐진 중국 방문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이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앞으로 조전을 보내 고인을 “중국 인민의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 하오펑유(好朋友·좋은 친구)”라고 표현하며 “‘키신저’라는 이름은 영원히 중미 관계와 이어져 있을 것이며, 중국 인민의 마음에 깊이 새겨지고 그리움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임병선 선임기자
2023-12-01 21면

많이 본 뉴스

국민연금 개혁 당신의 선택은?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현재의 보험료율(9%), 소득대체율(40%)을 개선하는 2가지 안을 냈는데요. 당신의 생각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로 각각 인상(소득보장안)
보험료율 12%로 인상, 소득대체율 40%로 유지(재정안정안)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