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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시간 꽉 채웠다… 잔혹한 복수, 위로·용기

5시간 꽉 채웠다… 잔혹한 복수, 위로·용기

류재민 기자
류재민 기자
입력 2023-09-06 01:03
업데이트 2023-09-06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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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이 불안한 집’ 인기몰이

영국 극작가 ‘그리스 비극’ 재해석
트라우마 극복기… 동시대성 물씬
“대본에 전율… 헛웃음 나게 잘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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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비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국립극단 ‘이 불안한 집’은 5시간 동안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배우들의 열연으로 관객들에 긴 호흡의 연극이 가진 매력을 전한다. 가족끼리 살해하는 막장 드라마 같은 전개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건 결국 살아있는 사람들이란 메시지를 통해 서로를 보듬고 살아가는 일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국립극단 제공
고대 그리스 비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국립극단 ‘이 불안한 집’은 5시간 동안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배우들의 열연으로 관객들에 긴 호흡의 연극이 가진 매력을 전한다. 가족끼리 살해하는 막장 드라마 같은 전개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건 결국 살아있는 사람들이란 메시지를 통해 서로를 보듬고 살아가는 일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국립극단 제공
오후 5시 30분에 시작해 2시간이 지난 오후 7시 22분에 끝난다. 어지간한 연극 하나 끝날 시간인데 이제 1부 종료다. 오후 7시 37분에 시작한 2부는 오후 9시 13분에 끝. 웬만한 오페라 대작 하나 끝날 시간인데 아직 더 있다. 3부는 오후 9시 28분부터 오후 10시 27분까지. 연극을 다 보고 나면 스스로 대견하다고 칭찬하게 된다.

국립극단이 장장 5시간에 걸친 ‘이 불안한 집’을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했다. 고대 그리스 비극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이스킬로스(기원전 525~456)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을 영국의 극작가 지니 해리스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트로이 전쟁에 나선 그리스 총사령관 아가멤논이 딸 이피지니아를 여신에게 제물로 바치자 이를 원망한 아내 클리템네스트라가 원한을 품은 데서 벌어지는 가족 간의 비극을 그렸다. 아이스킬로스는 이 작품으로 기원전 458년 고대 그리스 디오니소스 축제 비극 경연 대회에서 그의 13번째이자 마지막 우승을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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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비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국립극단 ‘이 불안한 집’은 5시간 동안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배우들의 열연으로 관객들에 긴 호흡의 연극이 가진 매력을 전한다. 가족끼리 살해하는 막장 드라마 같은 전개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건 결국 살아있는 사람들이란 메시지를 통해 서로를 보듬고 살아가는 일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국립극단 제공
고대 그리스 비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국립극단 ‘이 불안한 집’은 5시간 동안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배우들의 열연으로 관객들에 긴 호흡의 연극이 가진 매력을 전한다. 가족끼리 살해하는 막장 드라마 같은 전개지만 살아있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건 결국 살아있는 사람들이란 메시지를 통해 서로를 보듬고 살아가는 일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국립극단 제공
아내가 남편을 죽이고, 자녀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어머니를 죽이는 잔혹한 복수극이 제목처럼 불안함을 가득 안은 채 전개된다. 그리스 신화는 아무리 인간이 의지를 발휘해 자기 운명을 통제하려 해도 결국 어떻게든 신탁이 이뤄지는 서사가 담겨있다. 이 작품 역시 “내 운명은 내가 정해”라고 외치면서도 망령에 시달리는 인물들이 몇몇 징조들에 계속 불안해하며 결국 저주를 실현한다는 점에서 2500년 가까이 된 희랍극(그리스 시대 고전 연극)의 매력을 느끼게 한다.

김정 연출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대본을 받았을 때 엄청나게 전율했고 헛웃음이 날 정도로 잘 쓴 작품이라 생각했다”라면서 “원작의 틀을 지키면서 지금의 관객들에게 익숙하거나 편안한 호흡을 가지고 간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내가 가진 트라우마를 벗어나려고 하는 게 동시대적으로 느껴졌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1, 2부의 고전적 내용은 3부에 현대의 어느 정신병원으로 옮겨오면서 오늘날과 접점을 만들어낸다. 비과학적인 망령에 시달리던 인물들이 실은 내면의 깊은 상처를 가진, 오늘날의 용어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것을 제대로 치유하지 못해 평생을 비극적으로 살았다는 점이 주변 누군가 혹은 나의 이야기처럼 아프게 다가온다. 배우들이 상처 입은 내면을 몸짓으로 표현해낼 때 “나는 친구처럼 있을 거야. 그러니까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돼. 살아갈 수 있어”라는 대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는 인생에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전한다.

공연이 길어 자칫 지루해질 수 있지만 중간중간 유머를 곁들인 덕에 몰입감이 높다. 5시간에 걸쳐 쏟아지면서도 NG 없는 현란한 대사를 보는 재미, 20~60대의 배우 15명 누구 하나 존재감이 뒤지지 않게 펼쳐내는 명품연기는 어려운 결심이 필요한 이 작품을 볼만하게 만드는 요소다. 24일까지.

류재민 기자
2023-09-06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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