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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에게 부여한 서사는 그 자체로 악일까

악인에게 부여한 서사는 그 자체로 악일까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입력 2023-08-18 02:38
업데이트 2023-08-18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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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의 서사/듀나·박혜진·전승민 등 9명 지음/돌고래/320쪽/1만 8000원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
명제에서 출발한 9가지 쟁점
창작물 속 빌런들 묘사 분석
악을 소재로 삼은 작품 쓸 때
공감이라는 강박 경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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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묻지마 폭행이나 살인 사건이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등 픽션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잔혹한 악당들이 현실에서 넘쳐나고 있는 요즘 문학이나 영화 속에서 악인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논란이 되고 있다. 영화 ‘조커’의 한 장면. 서울신문 DB
최근 들어 묻지마 폭행이나 살인 사건이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등 픽션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잔혹한 악당들이 현실에서 넘쳐나고 있는 요즘 문학이나 영화 속에서 악인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논란이 되고 있다. 영화 ‘조커’의 한 장면.
서울신문 DB
최근 들어 잔혹 범죄들이 미디어에 자주 등장한다. 소셜미디어(SNS)에도 상상도 못 한 황당한 빌런(악당)들 이야기가 넘친다. 잔혹 범죄가 발생하면 언론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선정적 보도에 열을 올린다. 심지어 범죄 전문가라는 이들까지도 본인의 전문 영역을 넘어서 서사를 부여하는 경우가 있다. 이 때문에 언제부터인가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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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의 서사’(돌고래)는 이런 문제의식에 대해 소설가, 영화평론가, 문학평론가, 번역가, 영문학 연구자, 웹소설 작가, 비평가 등 9명의 전문가가 제시한 일종의 ‘악에 대한 서사 분석 보고서’다. 절대 악의 화신부터 악당이라고 부르기엔 모호한 빌런까지 수많은 소설, 영화, 드라마에서 이들이 어떻게 묘사되고 설명되는지와 문제는 무엇인지를 9가지 쟁점으로 철저히 분석했다.

저자들은 “문학 작품을 포함해 수많은 창작 서사는 인간의 복합성, 양가성, 윤리적 딜레마 등을 간접 체험하는 장소로 기능했다”면서 “이런 창작 서사의 입체성을 고려한다면 단순히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전제한다. 이들은 악의 서사와 재현 문제를 엄격히 논하려면 간략한 한 문장의 선언보다는 상세하고 정연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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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묻지마 폭행이나 살인 사건이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등 픽션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잔혹한 악당들이 현실에서 넘쳐나고 있는 요즘 문학이나 영화 속에서 악인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5월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체포된 정유정의 모습. 연합뉴스
최근 들어 묻지마 폭행이나 살인 사건이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등 픽션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잔혹한 악당들이 현실에서 넘쳐나고 있는 요즘 문학이나 영화 속에서 악인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5월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고 체포된 정유정의 모습.
연합뉴스
저자들이 분석한 작품과 인물은 한국 드라마 ‘작은 아씨들’, 웹소설 ‘나 혼자만 레벨업’, 슈퍼 히어로물 ‘어벤져스’, 스릴러물 ‘양들의 침묵’, 정유정의 소설 ‘완전한 행복’, 셰익스피어 작품들, ‘레미제라블’, ‘죄와 벌’을 거쳐 논픽션 ‘H마트에서 울다’까지 시대와 장르를 넘나든다.

문학평론가 박혜진은 ‘악이 동굴에서 나올 때’라는 글에서 ‘공감’이 악에 대한 서사에 모순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공감은 이야기의 기본 속성이자 주요 덕목인데 악을 소재로 삼은 작품에서만큼은 작가와 독자 모두 악인에게 공감해서는 안 된다는 요구에 직면하면서 필연적 모순이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악에 관해 서술할 때는 ‘공감’이라는 강박을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한다.

미스터리 전문지 ‘미스테리아’ 편집장인 김용언은 ‘범죄의 기술(記述): 선정주의를 넘어선 범죄 논픽션’이라는 글을 통해 “악은 곳곳에 존재하고 우리는 매일 매순간 작은 악의 돌부리에 발이 걸려 비틀거린다”면서도 “악인에게 목소리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범죄자들에게도 그런 상황으로 내몰린 가슴 아픈 비밀의 이유가 있었다는 관대한 이해, 범죄 과정을 최대한 전달하겠다는 이유로 범죄자 일인칭 시점에서 피해자를 ‘사냥’하는 과정을 집요하게 표현하려는 태도 같은 것들이다”라고 지적했다.

책을 기획한 김지운 편집자는 “OTT 플랫폼 다양화로 서사 콘텐츠 향유가 전례 없이 일상화되고 SNS로 인해 현대인들은 이야기 홍수에 노출됐다”면서 “악인의 서사를 불매와 분서갱유 구실로 고착시키기보다는 ‘악인에 대한 서사’를 어떻게 바꾸고 바라봐야 할지 차분히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2023-08-1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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