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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천수각, 예상치 못한 전쟁의 산물/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천수각, 예상치 못한 전쟁의 산물/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입력 2023-05-01 01:33
업데이트 2023-05-01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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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지성 천수각, 1608년, 일본 효고현.
히메지성 천수각, 1608년, 일본 효고현.
1592년 4월 13일 고니시 유키나가의 선발대가 부산을 공격함으로써 임진왜란이 시작됐다. 700척의 배를 타고 온 왜군은 하루 만에 부산성을 점령했다. 물밀듯이 북상하는 왜군의 기세에 눌려 4월 30일 선조는 피란길에 올랐으며, 5월 초에는 평양으로 도망갔다. 이맘때의 일이다. 1598년에야 비로소 명나라까지 참전한 동아시아의 전쟁이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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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성 천수각, 현대 복원, 일본 오사카.
오사카성 천수각, 현대 복원, 일본 오사카.
전쟁은 조선 전역에 참혹한 상처를 남겼지만 전장이 아니었다고 해서 일본이 평온했던 것도 아니다. 전국시대의 혼란을 평정한 오다 노부나가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이어진 치열한 권력다툼을 거치며 막부가 득세했다. 권력을 잡은 쇼군과 다이묘들은 앞다퉈 자신들의 성을 지었다. 야트막한 구릉에다 성주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웅장하게 건설한 성은 무장들의 공간이다. 따라서 그만큼 투박하고 남성적이다.

우리나라 목조건물은 처마 모서리를 길게 빼서 지붕을 곡선적으로 만드는 게 특징이지만 일본의 성들은 지붕도 직선적이며 엄격해 보인다. 오다 노부나가가 세운 아즈치성이 16세기를 대표하는 성 건축이었지만 그의 몰락과 함께 소실됐다.

한국인들이 많이 가는 관광지인 오사카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지은 것이다. 오사카성을 대표하는 천수각은 현대에 재건된 것이나 외형은 전통을 따랐다. 보통 3~5층 높이로 지은 천수각은 천수대라는 석축 위에 세운 목조건물이다. 천수각은 중국이나 한국, 베트남 등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일본 고유의 건축이다. 외관이 높고 화려하다 보니 천수각에 성주가 기거한다거나, 높은 탑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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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하지만 천수각은 사방에 창을 두어 외부로부터 쳐들어오는 적을 감시할 수 있게 만든 방어용 누각이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며 시야를 확보하고 전세와 전황을 파악해 전투를 지휘하기 좋게 만든 망루다. 일종의 군사시설인 셈이다. 그러니 그 내부는 밖에서 보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고, 어둡고 불편하다.

현재 남아 있는 천수각은 일본 전역에 12곳밖에 없으며, 그중 가장 오래된 것이 효고현에 있는 히메지성이다. 외부를 모두 흰색으로 칠해 하얗게 보이기 때문이기도 한데, 층층이 올린 지붕이 날아가는 백로처럼 우아해 보인다고 해서 백로성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기와는 검은색인데도 강풍에 기와가 날릴까 봐 틈새에 모두 회반죽을 발라 천수각 전체가 흰색으로 보이는 것이다. 히메지는 에도, 즉 도쿄로 통하는 길목의 전략적 요충지여서 에도 막부에서 신경을 많이 썼던 곳이라 비교적 원형을 잘 간직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은 명의 몰락과 함께 동아시아의 정치·경제 지형을 바꿔놓았다. 저마다 제 나라 고유의 문화를 융성하게 만든 결과를 낳기도 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다 예측할 수는 없는 법이다. 특히 전쟁은.
2023-05-0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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