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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야” 남한 말투 썼다 탄광행…평양말 연습하는 北주민들

“자기야” 남한 말투 썼다 탄광행…평양말 연습하는 北주민들

김민지 기자
김민지 기자
입력 2023-03-16 09:44
업데이트 2023-03-16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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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조선중앙TV는 8일 평양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다채로워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여러 디자인의 달린옷(원피스의 북한식 표현)을 입은 북한 여성들의 모습.  2023.3.8  조선중앙TV 화면 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TV는 8일 평양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다채로워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진은 여러 디자인의 달린옷(원피스의 북한식 표현)을 입은 북한 여성들의 모습. 2023.3.8 조선중앙TV 화면 연합뉴스
북한 당국이 한국말을 괴뢰말로 지정하고 단속 강화에 나서자, 북한 주민들은 한국식으로 고정된 언어습관을 고치려 노력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에서는 K-드라마와 영화 등의 영향으로 ‘오빠’, ‘남친(남자친구)’, ‘자기야’ 등의 단어를 쓰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북한은 지난 1월 17~18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8차 회의에서 ‘평양어보호법’을 채택하고 남한말을 비롯한 외국식 말투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오빠야, 자기야’ 같은 호칭을 비롯해 ‘남친(남자친구), 쪽팔린다(창피하다)’ 같은 어투를 금지시켜 내부 결속력을 단속하겠다는 의도다.

법에는 남한말을 쓰면 6년 이상의 징역형, 남한말투를 가르치면 최고 사형에 처한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함경북도의 한 주민소식통은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청진농업대학 학생들 속에서 손전화 통화를 하면서 ‘자기야’ 등의 남조선 말투를 사용하다 단속되는 사건이 있었다”며 “남조선 말투로 전화를 하다가 단속된 청진농업대 학생 4명은 퇴학처분을 당하고 가장 어려운 직장인 온성탄광으로 강제 배치됐다”고 했다. 이어 “이전에는 단속에 걸려도 반성문 작성 정도로 끝났는데 처벌 강도가 점점 세지고 있다”며 “이번 사건으로 함경북도의 도시에 소재한 대학의 학생들 속에서 손전화 통화와 일상생활에서 괴뢰말투를 사용하는 데 대한 경각심이 한층 높아졌다”고 전했다.

● ‘장군님 만세’만 외치다 한국식 말투에 매료
자유아시아방송(RFA)은 15일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요즘 당국이 ‘평양문화어보호법’에 의거해 평양말을 살려 나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면서 “이미 한국식 말투에 익숙해진 주민들은 평양말을 따로 연습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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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 1일 농촌발전 전략과 경제 활성화 방안 마련을 위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7차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마무리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1일 농촌발전 전략과 경제 활성화 방안 마련을 위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7차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마무리했다.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소식통은 “오랜 세월 꽉 막힌 체제에서 ‘장군님 만세’만 외치던 주민들은 한국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자유롭고 매력적인 한국식 생활문화와 말투에 매력을 느껴 이를 따라 하게 된 것”이라면서 “한국식 말투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자 한국말이 얼결에 튀어나와 처벌받을까 염려돼 조선(북한)식 말투를 연습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소식통은 “한국영화와 드라마를 가장 많이 보는 대상은 불법 영상물을 단속하는 사법일꾼들과 간부들, 그 가족, 친척들”이라면서 “체제를 보위하고 지켜야 할 사법일꾼들이 오히려 한국영화와 드라마에 빠져 한국식 말을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 K-문화에 빠진 북한
북한에서 주민 10명 중 9명 이상은 한국 드라마 또는 영화 등을 시청한 적이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

지난해 11월 북한인권단체 국민통일방송(UMG)과 데일리NK는 올해 북한 주민 50명을 전화로 인터뷰한 후 ‘북한 주민의 외부정보 이용과 미디어 환경에 대한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 주민 50명 중 49명(98%)는 ‘한국을 포함한 외국 콘텐츠를 시청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다만 조사 대상 주민들이 외부의 전화 인터뷰에 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북한 주민보다는 외부 접촉에 적극적인 성향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어떤 종류의 외국 영상을 보느냐’는 질문(복수 응답)에 96%는 한국 드라마·영화, 84%는 중국 드라마·영화, 68%는 한국 공연, 40%는 한국 다큐멘터리, 24%는 미국 등 서방 드라마·영화를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해외 영상을 얼마나 자주 보냐는 질문에는 ‘매주 1번 이상’이 28%, ‘매달 1번 이상’은 46%였다. 1명은 ‘거의 매일’ 본다고 답했다. 4명 중 3명꼴로 월 1회 이상 해외 영상을 보는 셈이다.

외국 영상을 접하는 경로(복수 응답)로는 ‘가족이나 친척으로부터 빌린다’(64%)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친구한테서 무료로 빌린다(50%), 현지 장마당에서 샀다(22%)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한국이나 다른 해외 영상 콘텐츠를 본 뒤 달라진 점’으로는 79.2%가 ‘한국 사회에 호기심이 생겼다’고 답했다. 56.3%는 ‘한국식 화법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고, 39.6%는 ‘한국 옷 스타일을 따라 했다’고 했다.

북한 정권에서 해외 콘텐츠를 체제를 위협하는 요인으로 꼽고 있다. 이에 북한은 2020년 12월 남측 영상물 유포자를 사형에 처하고 시청자는 최대 징역 15년에 처하는 내용의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하는 등 외부 문물 유입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보다가 적발된 북한 학생 7명이 무기징역 등 중형이 선고받았고, 해당 드라마가 들어있는 USB 장치를 중국에서 들여와 판매한 주민은 총살됐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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