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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2년차, 서방 ‘현타’ 왔나…우크라 무기지원 삐그덕 [월드뷰]

전쟁 2년차, 서방 ‘현타’ 왔나…우크라 무기지원 삐그덕 [월드뷰]

권윤희 기자
권윤희 기자
입력 2023-03-02 18:43
업데이트 2023-03-0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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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땅 고장”, “우리 쓸 것도 부족”
탱크 지원하자던 국가들 태세전환
독일 “허락해주니 아무것도 안 해”
오랜 군축 탓 무기 생산능력 저하
내년 대선 앞둔 미국도 여론 악화
의회의 조 바이든 행정부 압박 심화

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을 넘겨 2년차에 접어든 가운데, 대(對)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두고 서방에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쟁 장기화로 피로가 누적된 데다, 내부 반발과 책임 소재를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면서 한계에 부딪힌 모양새다.

특히 서방제 주력전차 레오파르트2 제공 약속이 제대로 지켜질 수 있을지를 두고 의문이 커지고 있다. 개발국인 독일이 수출을 허용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실제로 전달된 전차가 손에 꼽을 수준인데다 곳곳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속출하고 있어서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 1월 25일 연방의회에서 유럽 동맹국과 함께 우크라이나에 레오파르트2 전차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더해 다른 협력국이 보유한 레오파르트2 전차의 우크라이나 재수출도 승인하기로 했다.

하지만 유럽 각국이 보유하고 있는 2000여대의 레오파르트2 전차 중 우크라이나에 보내기로 한 물량은 2개 전차대대 분량인 62대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수량을 채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우리 쓸 것도 부족해” 유럽의 태세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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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현지시간) 라트비아의 아다지 군기지에서 실시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다국적 합동군사훈련 ‘실버 애로우 2022’에 스페인군이 레오파르트 2와 함께 참여하고 있다. 2022.9.29 로이터 연합뉴스
29일(현지시간) 라트비아의 아다지 군기지에서 실시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다국적 합동군사훈련 ‘실버 애로우 2022’에 스페인군이 레오파르트 2와 함께 참여하고 있다. 2022.9.29 로이터 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레오파르트2를 우크라이나에) 보낼 수 있도록 허용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일부 국가들이 그렇게 하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지원을) 재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독일에 레오파르트2 수출 승인을 압박하는데 앞장섰던 국가 중 하나인 핀란드는 포탑을 제거하고 지뢰 제거용으로 개조한 레오파르트2 3대를 제공하기로 하는 데 그쳤다. 핀란드는 레오파르트2 약 200대를 운용하고 있지만 ▲아직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은데다 ▲러시아와 국경을 직접 맞대고 있다는 점 때문에 주력전차를 타국에 넘겨줄 수 없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비슷한 처지인 스웨덴 역시 지난달 말 최다 10대의 레오파르트2를 지원하는데 그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스웨덴에서는 군부의 반대가 거셌던 것으로 알려졌다. 스페인의 경우에는 보유 중인 레오파르트2 전차 108대 가운데 다수가 관리 상태가 나빠 전장으로 향하려면 짧게는 몇 주에서 몇 달에 걸친 보수가 필요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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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현지시간) 독일군이 라트비아 아다지 군기지에서 실시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훈련에 레오파르트 2와 함께 참여하고 있다. 2021.3.26 로이터 연합뉴스
26일(현지시간) 독일군이 라트비아 아다지 군기지에서 실시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훈련에 레오파르트 2와 함께 참여하고 있다. 2021.3.26 로이터 연합뉴스
레오파르트2 전차 200여대를 운용하는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전쟁 1주년이었던 지난달 24일 레오파르트2 전차 4대를 처음으로 우크라이나에 전달하는 등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태도이지만 역시 전체 지원 규모는 14대에 그칠 전망이다. 그나마도 한국산 K2 흑표 전차가 폴란드에 인도돼 국방공백 우려가 해소될 때까지는 나머지 레오파르트2 인도가 미뤄질 수 있다고 일부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네덜란드와 독일, 덴마크가 레오파르트2의 이전 모델인 레오파르트1 150대를 보수해 제공한다는 계획도 워낙 구형 장비인 탓에 퇴역한 승무원들을 수소문해 교관직을 맡겨야 하는 등 어려움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애초 미국이 M1 에이브럼스 전차를 지원하지 않으면 레오파르트2도 줄 수 없다며 버티다 국제사회의 압박에 떠밀려 총대를 멘 독일은 이런 상황에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최근 뮌헨 안보 회의 석상에서 “여기서 이름을 입에 올리진 않겠지만, 독일 뒤에 숨는 걸 선호하는 일부 국가가 있다. 허락만 해주면 (지원을) 하고 싶다더니 우리가 허락해주자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오랜 군축 탓 유럽 무기 생산능력 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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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현지시간)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베를린 총리관저에서 열린 내각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3.1.25 EPA 연합뉴스
25일(현지시간)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베를린 총리관저에서 열린 내각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3.1.25 EPA 연합뉴스
근본적인 문제는 과도한 군축에 있다고 NYT는 지적했다.

1991년 소비에트연방(소련) 해체로 냉전이 종식된 이후 유럽 각국은 끊임없이 군축을 단행, 군의 규모를 줄여왔으며 이로 인해 최소한의 인원과 장비만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국방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한 탓에 처참할 정도로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맞이했다. 불과 62대의 레오파르트2를 모으기조차 쉽지 않은 현 상황은 그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오랜 군축으로 유럽 내 방위산업체들의 무기 생산능력이 저하된 까닭에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줄어든 주력전차 보유 대수를 복원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점도 유럽 국가들이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배경으로 꼽힌다.

다만 독일 싱크탱크 유럽외교협의회(ECFR)의 안보 전문가 구스타브 그레셀은 그렇기에 오히려 지금 우크라이나에 탱크를 보내야만 한다면서 “이번 전쟁이 끝나면 러시아는 다시 나토에 대한 위협으로 자리매김하겠지만, (우크라이나에서 입은 손실 때문에) 실제로 위협이 되려면 수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 美 여론 악화…내년 대선 앞두고 눈치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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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예고없이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교회 성 미하일 황금 돔 수도원 앞을 지나고 있다. 2023.2.20 AP 연합뉴스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예고없이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교회 성 미하일 황금 돔 수도원 앞을 지나고 있다. 2023.2.20 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지원을 두고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키이우를 깜짝 방문해 “미국이 여러분과 함께한다”며 지속 지원 의지를 천명했지만, 여론은 돌아섰고 의회는 책임 문제를 두고 행정부를 계속 압박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하원 군사위원회에서 일부 공화당, 민주당 의원들은 국방부 관리들에게 우크라이나와 관련한 지출이 어디에 어떻게 이뤄졌는지 캐묻고 책임성을 거듭 언급하며 워싱턴 내 기류 변화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여론도 악화 추세다.

AP통신과 시카고대 여론연구센터(NORC)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 응답자 중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찬성하는 비율은 48%로, 지난해 5월 조사 때 60%였던 것보다 줄었다. 퓨 리서치 센터의 최근 조사에서는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너무 많이 지원한다는 응답자가 26%로 1년 전의 7%에서 크게 늘었다.

● 유권자 피로 축적…고민 깊어지는 바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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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깜짝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올레나 젤렌스카 영부인을 만나고 있다. 2023.2.20 AFP 연합뉴스
2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깜짝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올레나 젤렌스카 영부인을 만나고 있다. 2023.2.20 AFP 연합뉴스
코너에 몰린 바이든 대통령은 자국 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언급을 줄이고 있다. 지난달 국정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언급은 완화된 수준이었고 최근 미 전역을 돌면서도 국내 문제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만 대외적으로는 우크라이나 관련 미국내 여론 약화에 대한 우려를 일축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4일 ‘많은 미국민이 우크라이나 지원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 묻고 있다’는 ABC뉴스 질문에 “얼마나 많이 그렇게 묻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도널드 트럼프의 선거 표어) 군중이 그런 건 알고 있고, 공화당 우파가 우리가 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며 “우리는 우크라이나 독립 유지를 돕는 비용보다 외면하는 비용이 훨씬 더 높을 수 있는 상황에 있다”고 강조했다.

내년으로 예정된 미 대통령선거도 상황을 복잡하게 하는 요인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보는 쪽에서는 대선으로 정계에서 원심력이 커지고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유권자들의 피로도가 쌓이면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미국의 의지가 약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 “바이든 백지수표” 트럼프 등 유력 주자 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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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플로리다주 자택인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2024년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2022.11.15 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플로리다주 자택인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2024년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2022.11.15 AFP 연합뉴스
출마를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주 바이든 대통령이 오하이오주 이스트팔레스타인 화물열차 탈선 사고 현장 대신 키이우를 방문한 것을 맹비난했다.

공화당 유력 대선 주자 중 한명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바이든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제약 없는 백지수표’를 날리고 있다며 이는 “우리 국익과 안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지지하는 공화당 주자인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이나 니키 헤일리 전 주유엔 대사는 트럼프나 디샌티스에 지지율이 훨씬 뒤처져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패트리엇 미사일에 이어 에이브럼스 주력전차를 지원하기로 했고 우크라이나는 F-16 전투기까지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라 미 하원 내 기류와 여론은 더욱 소용돌이칠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대해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차관보를 지낸 톰 맬리나우스키 전 의원은 “패트리엇, F-16, 장거리 미사일 같은 것들을 섞어 넣으면 진실의 순간이 더 빨리 다가올 것”이라며 “의회 내 (지원) 찬성론자들이 MAGA의 저항을 극복할 계획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그런 계획이 없다면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가진 자원을 절약하고 탄약과 같이 우크라이나에 가장 필요한 것들에 집중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
권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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