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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참사의 기록]임시 공동묘지엔 ‘번호표 시신’, 병원에선 “제발 환자가 왔으면”

[튀르키예 참사의 기록]임시 공동묘지엔 ‘번호표 시신’, 병원에선 “제발 환자가 왔으면”

곽소영 기자
곽소영 기자
입력 2023-02-12 18:26
업데이트 2023-02-12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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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들의 절규와 통곡이 뒤덮은 안타키아
시신 번호 적힌 나무판자에 붙들고 오열하는 가족들
의료진 “구급차 소리는 치료할 환자가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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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현지시간) 찾은 튀르키예 하타이주 안타키아의 한 대학병원. 이곳은 응급실 입구부터 복도, 접수처를 포함해 병원 안 곳곳에는 치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가득했다.  안타키아 곽소영 기자
11일(현지시간) 찾은 튀르키예 하타이주 안타키아의 한 대학병원. 이곳은 응급실 입구부터 복도, 접수처를 포함해 병원 안 곳곳에는 치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가득했다.
안타키아 곽소영 기자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부 국경지역을 강타한 규모 7.8의 대지진 여파로 곳곳이 폐허로 변해버렸다. 아직 수 많은 이들이 건물 잔해에 갇혀 있는데도 구조 작업은 더디고 시간만 빠르게 흐르면서 살아남은 이들을 더 가슴 아프게 하고 있다. 한 순간에 가족, 친구, 보금자리를 모두 잃은 생존자들은 질병, 추위, 굶주림이라는 또 다른 재난과도 싸워야 한다. 이 곳에 과연 희망이 있을까 싶지만 폐허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이들은 우리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이제 ‘시간과의 싸움’에 돌입한 재난의 현장에서 서울신문은 절망이 아닌 희망의 기록을 써내려 간다는 심정으로 현지 상황을 기록한다.

“구급차 소리가 들리면 희망을 품게 됩니다. 생존자를 싣고 병원으로 온다는 이야기니까요.”

11일(현지시간) 찾은 튀르키예 하타이주 안타키아의 한 대학병원 안은 미처 닦아내지 못한 핏자국이 바닥 곳곳에 얼룩져 있었다. 이 병원에서 일하는 몰칸은 “지진이 난 첫날에는 병원 전체가 ‘피바다’였다가 지금은 환자가 줄었다”며 “다른 도시에서 의료진과 장비 지원이 많이 왔고 수술과 진료도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지진 이후에도 병원 내부 수도와 전기가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했고, 환자가 몰리면서 병원 주차장에는 임시 진료 텐트까지 펼쳐져 있었다. 응급실 입구부터 복도, 접수처를 포함해 병원 안 곳곳에는 치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가득했다. 하타이주에서 가장 큰 병원이 지진으로 파괴되면서 상태가 심각한 생존자들은 대부분 이 병원으로 보내진다. 하지만 골든 타임이 지나면서 생존자가 발견돼 병원까지 이송되는 경우는 드물어졌다.

오누루 병원장은 “지진 이후 지금까지 3000명 이상이 치료받았고, 그 중 650명이 사망했다”며 “수술 중인 상황에서 긴급환자가 또 오면 헬기나 배로 다른 도시의 대형 병원으로 이송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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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 위험이 있는 건물을 피해 야외 주차장에 의료 텐트를 설치한 병원의 모습. 안타키아 곽소영 기자
붕괴 위험이 있는 건물을 피해 야외 주차장에 의료 텐트를 설치한 병원의 모습.
안타키아 곽소영 기자


안타키아의 병원은 건물이 무너져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곳을 제외하면 대부분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붕괴 위험이 있는 병원은 건물 내부를 사용하지 않고 야외 주차장에 의료 텐트를 설치한 채 환자들을 치료했다. 튀르키예의 다른 도시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에서 온 의료 봉사자들이 자칫 공백이 발생할 수 있는 의료 시스템을 메우고 있었다. 의료 텐트 안쪽 임시 분만실에서는 갓 태어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이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진은 “지진 첫날과 이튿날에만 해도 1시간에 100명 넘는 환자들이 몰려들었다”며 “전 세계에서 지원을 보내준 덕에 의료진과 장비는 충분하다. 다만 지금은 드문드문 환자가 실려 온다. 한명이라도 더 이곳으로 오는 게 우리의 바람”이라고 전했다.

두 병원 외에 다른 무너진 병원 건물에는 군인과 경찰 수십명이 경비를 서면서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절도 등 약탈 행위를 감시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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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이후 신원이 확인되지 않고 묻힌 묘지 위로 나무판자에 번호가 적혀 있다. 시신을 찾았다는 통보를 받고 달려온 가족들이 묘지 위에서 울부짖고 있다. 안타키아 곽소영 기자
지진 이후 신원이 확인되지 않고 묻힌 묘지 위로 나무판자에 번호가 적혀 있다. 시신을 찾았다는 통보를 받고 달려온 가족들이 묘지 위에서 울부짖고 있다.
안타키아 곽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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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판자에 번호가 적힌 묘지 위에서 가족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다. 안타키아 곽소영 기자
나무판자에 번호가 적힌 묘지 위에서 가족들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다.
안타키아 곽소영 기자


도시의 공터 곳곳에는 공동묘지가 생겨났다. 튀르키예인들은 시신을 이슬람 사원 내에서 깨끗하게 씻긴 뒤 나무관에 담아 사원 근처 묘지에 매장하는 풍습이 있다. 하지만 지진으로 평소와 같은 장례 절차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진 이후 신원이 확인되지 않고 묻힌 묘지에는 나무판자에 검은색 스프레이로 번호가 적혀 있었다. 시신이 공동묘지에 도착하면 경찰은 시신 가방을 열어 얼굴 등 사진을 찍은 뒤 지문을 채취해 시신 정보를 확인한다. 이렇게 부여된 ‘번호’는 묘지 위 나무판자에 새겨진다. 번호가 부여된 시신은 가족들에게 통보된다. 공동묘지에는 아직 가족들을 만나지 못한 번호가 새겨진 나무판자가 빼곡하게 세워져 있었다. 가족의 시신을 확인한 이후 번호가 적힌 나무판자 위에서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울음을 터트리는 이들도 보였다.

공터에 임시로 조성된 공동묘지에는 가족의 시신을 찾으려는 사람들과 검사, 의료진, 경찰, 그리고 시신을 싣고 오는 사람들로 뒤섞여 혼잡했다. 공동묘지로 걸어가던 한 여성은 “아들이 죽어서 왔다”며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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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하타이주 안타키아 외곽에 조성된 임시 공동묘지의 모습. 안타키아 곽소영 기자
튀르키예 하타이주 안타키아 외곽에 조성된 임시 공동묘지의 모습.
안타키아 곽소영 기자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은 공동묘지뿐 아니라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지진으로 언니네 가족을 잃은 오즐람(45)은 여느 생존자와 마찬가지로 무너진 집 앞에서 노숙하면서 구조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각장애인인 언니를 살뜰히 챙기며 살아온 오즐람은 가정을 꾸린 이후에도 같은 동네에서 서로를 보듬으며 지냈다. 오즐람의 가족들은 지진에도 살아남았지만, 언니네 집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오즐람은 “무너진 건물 사이로 언니와 형부의 얼굴이 보였다”며 “‘물을 달라’는 언니의 말에 콘크리트 위로 물을 쏟아 흘려보내기도 했다”고 전했다.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던 언니와 형부, 조카 2명과의 대화는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춥다”, “잠이 온다”던 언니네 가족들은 지진 발생 둘째 날부터 말을 잃었다. 오즐람은 “이틀이나 살아있었지만 결국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구조대가 시신 3구를 꺼냈다”며 “막내 조카의 시신은 아직 찾지 못했다”고 울음을 터트렸다.
안타키아 곽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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