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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보다 공정함”… 美블루칼라, 보수와 손잡다

“복지보다 공정함”… 美블루칼라, 보수와 손잡다

하종훈 기자
하종훈 기자
입력 2022-04-07 20:16
업데이트 2022-04-08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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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칼라 보수주의/티머시 J 롬바르도 지음/강지영 옮김/회화나무/503쪽/2만 4000원

진보적 자유주의·분배 한계 체감
소수자의 무임승차·폭력에 반감
‘자수성가’ 리조, 그들 대변해 인기
백인 노동자, 트럼프에 투표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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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히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 미시간주 워싱턴타운십 집회에서 지지자들을 상대로 연설하는 모습. 워싱턴타운십 AP 연합뉴스
전히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 미시간주 워싱턴타운십 집회에서 지지자들을 상대로 연설하는 모습.
워싱턴타운십 AP 연합뉴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 선거 후보는 미국 사회 주류에서 밀려난 성난 백인 노동자(블루칼라) 계층의 지지로 당선됐다. 하지만 이미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2000년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당선에서도 블루칼라의 보수주의는 당락을 가르는 지배적 정치양식으로 떠올라 있었다. 자유주의와 국가 주도 보편적 복지에 반대하는 보수주의 정치가 블루칼라 계층의 지지를 얻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에서는 2018년에 출간된 ‘블루칼라 보수주의’는 미국 정치 보수주의 변종의 발전사를 추적한다. 사우스앨라배마대 역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그 실마리를 1960~70년대 활약한 프랭크 리조(1920~1991)라는 자수성가한 정치가에서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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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호황 속에서 미국 백인 블루칼라 계층은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었고, 교육이나 의료 등 다양한 사회복지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실업률이 높아지자 이들은 자유주의와 국가 주도 경제발전을 강조한 ‘뉴딜’이 더는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흑인이 대다수인 빈민층을 위한 공공주택이 들어서면 범죄가 늘어난다고 반대하고, 소수인종과 여성에 대한 고용 차별을 폐지하라는 요구는 ‘역차별’이 된다고 거부했다. 백인 블루칼라들은 ‘근면·희생·자기계발’이라는 정체성과 자부심으로 자격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분하고, 사회 정책들을 선별적으로 수용하거나 거부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은 열심히 노력해 권리를 획득했지만, 가난한 유색인종은 이와 유사하게 권리를 얻은 것이 아니라고 믿었다. 이들 입장에서 보면 공정과 정의를 위한 의로운 싸움이었고 이를 자극한 사람이 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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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리조 전 미국 필라델피아 시장이 시 경찰청장 시절인 1969년 만찬 참석 도중 발생한 폭력사태에 대응해 턱시도 안에 야경봉을 찔러 넣은 모습. 블루칼라 출신으로 단호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 준 이 사진 덕에 리조의 정치적 입지가 높아졌다.  회화나무 제공
프랭크 리조 전 미국 필라델피아 시장이 시 경찰청장 시절인 1969년 만찬 참석 도중 발생한 폭력사태에 대응해 턱시도 안에 야경봉을 찔러 넣은 모습. 블루칼라 출신으로 단호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 준 이 사진 덕에 리조의 정치적 입지가 높아졌다.
회화나무 제공
특히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말단 경찰에서 시작해 시 경찰청장이 된 리조는 부유하고 좋은 대학을 나온 엘리트들과 자신을 대비시키면서 ‘근면을 통해 자격을 획득했다’는 블루칼라들의 정통성과 자부심을 부추겼다. ‘우리 중 한 명’이라는 이미지로 필라델피아 시장에 당선된 그는 ‘거저 얻기만을 바라는’ 소수자에 대한 반감을 자극하며 정치적 기반을 유지했다. 1964년 필라델피아에서 경찰과의 갈등으로 일어난 흑인 폭동은 백인 블루칼라 계층의 인종차별적 성향과 법질서 우선주의를 공고히 하기도 했다. ‘자격 없는 사람들’에 대한 블루칼라의 불만을 자극하는 우파 포퓰리즘은 레이건과 트럼프 시대까지 이어져 왔다.

인종적 특권을 은폐하는 백인들에 비판적인 저자는 미국 보수주의의 발전을 복지국가 확장의 실패나 좌우파의 이분법적 구분에서 벗어나 바라보고자 했다. 백인 블루칼라가 자신들을 위협하는 경제적 구조조정과 싸우면서도 흑인을 포함해 중산층 백인들의 경제적 권력을 탈취하려는 자들과 이들을 옹호하는 자유주의자들을 더 큰 위협으로 본다는 점을 언급하며, 보수주의가 자유주의의 한계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미국 사회에는 흑백 인종 갈등이란 변수가 있지만, 현재 한국의 상황과 무관하지만은 않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직원들의 정규직화에 정규직 직원들이 ‘공정’과 ‘역차별’을 내세우며 비난하는 모습, 재개발·재건축 지구에서 집값이 내려간다는 이유로 임대주택 건설에 반대하는 모습 등에서 기시감을 느낀다.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 요구를 시민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라고 비난하는 정치권 등의 혐오를 매개로 한 우파 포퓰리즘과 ‘선별적 수용과 거부’는 이 책이 남의 얘기가 아님을 보여 준다.

하종훈 기자
2022-04-0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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