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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제노역 피해자 안희수 할머니 별세

일제강점기 강제노역 피해자 안희수 할머니 별세

강원식 기자
입력 2022-02-21 18:23
업데이트 2022-02-21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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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초등 6학년때 일본 군수공장 강제동원 노역.
강제노역 피해 손해배상 소송 1,2심 승소.
대법원 최종 판단 기다리던 중 향년 93세로 별세

일제강점기 일본 군수공장에 강제동원된 ‘근로정신대’ 피해자 안희수(93·경남 마산) 할머니가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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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93세로 21일 별세한 근로정신대 피해자 안희수 할머니.
향년 93세로 21일 별세한 근로정신대 피해자 안희수 할머니.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정다운요양병원에 마련된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피해자 안희수 할머니가 빈소. 연합뉴스
21일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과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안 할머니는 이날 새벽 창원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안 할머니는 마산 성호초등학교 6학년이던 1944년 일본 도야마 군수공장 후지코시 회사로 동원돼 매일 10~12시간씩 혹독한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당시 일본인 교사가 “후지코시에 가면 상급학교에도 다닐 수 있고, 꽃꽂이도 배우고 돈도 벌 수 있다”는 등 거짓말로 선동해 근로정신대에 지원하게 했다.

1928년 설립된 후지코시는 조선에서 근로정신대를 가장 많이 동원한 기업이다.

1945년 자료에는 조선 전국에서 동원된 12~18세 한국인 소녀 1089명이 해당 회사에서 근무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생전에 안 할머니는 “후지코시 공장으로 끌려간 이틀 뒤부터 군대식 훈련을 받는 등 혹독한 노역을 했다”고 말했다.

아침 식사는 밥 4분의 1 공기, 단무지 한 개, 된장국이 제공됐고, 점심은 삼각빵 한 개가 전부였다. 열악한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외출이 제한되고 감시를 당했다.

안 할머니는 자신의 몸 보다 두 배 이상 큰 선반기계를 이용해 여러 작업을 했다.

움직이는 기계에 기름을 넣어주면 그 기름에 깔때기를 대고 입으로 빨아올리는 일도 당시 안 할머니가 한 여러 일 가운데 하나였다.

잘못해 기름을 많이 마시는 일도 자주 있었다.

안 할머니는 생전에 “어린 나이에 중노동으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었고, 단 한 번도 노동에 대한 임금은 받은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안 할머니는 2003년 후지코시를 상대로 동료 피해자들과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했지만 일본 현지 법원은 2011년 최종 패소 판결을 내렸다.

2013년에는 후지코시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1·2심에서 승소했다. 2019년 1월 2심 승소 판결 이후 대법원의 마지막 판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 할머니의 남은 소송은 유족이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는 창원정다운 요양병원 특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3일 오전 7시 30분이다.
창원 강원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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