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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설 선생’ 46년 연구 집대성… “대한매일신보, 역사를 움직인 신문”

‘배설 선생’ 46년 연구 집대성… “대한매일신보, 역사를 움직인 신문”

허백윤 기자
허백윤 기자
입력 2022-02-16 16:40
업데이트 2022-02-17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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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건의 역사…’ 펴낸 정진석 교수

배설·신문, 일제에 눈엣가시
소요 조장·횡령 누명 쓰기도

네 번의 재판 생생하게 재연
상하이 법정 기록 최초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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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평생 대한매일신보와 발행인 배설 선생의 일대기를 좇은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국제사법사, 외교사, 항일 독립운동사, 언론사 등이 모두 얽힌 기록들을 정리하는 것은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가 해낼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면서 “기왕 내가 발굴과 정리를 시작했으니 후대를 위해 끝까지 찾아내고 마무리해야 한다는 마음에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사진은 16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를 찾아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의 1905년 8월 11일자 국한문판 제1호의 영인본을 담은 전시물 앞에 선 정 교수.  박윤슬 기자
반평생 대한매일신보와 발행인 배설 선생의 일대기를 좇은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국제사법사, 외교사, 항일 독립운동사, 언론사 등이 모두 얽힌 기록들을 정리하는 것은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가 해낼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면서 “기왕 내가 발굴과 정리를 시작했으니 후대를 위해 끝까지 찾아내고 마무리해야 한다는 마음에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사진은 16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를 찾아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의 1905년 8월 11일자 국한문판 제1호의 영인본을 담은 전시물 앞에 선 정 교수.
박윤슬 기자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발굴을 시작한 것과 후대를 위한 책임감에 보낸 시간들이었죠.”

언론사 연구의 권위자인 정진석(83) 한국외대 명예교수가 16일 ‘네 건의 역사드라마’(소명출판)를 펴낸 소감을 밝히며 지난 46년을 돌아봤다. 최근 발간된 책은 그가 반세기 가까이 집중한 항일 민족지 대한매일신보와 발행인 배설(영국명 베델)에 대한 연구를 집대성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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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매일신보 발행인이었던 배설 선생. 서울신문 DB
대한매일신보 발행인이었던 배설 선생.
서울신문 DB
정 교수는 1976~1977년 한국신문연구소(현 언론진흥재단)와 대한매일신보 국한문판 6년치 영인본을 냈고, 1984년엔 관훈클럽정신영기금을 통해 한글판 4년치 영인본을 발행하며 신문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국립중앙도서관과 각 대학 등에 흩어져 있는 자료를 찾아 다니고 기사를 모두 사진으로 찍어 인화한 다음 복원했다”면서 “영인본을 만들며 당시 신문에 배설의 공판 기록이 자세하게 연재된 것을 발견하고 따로 정리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책에서 다룬 1907~1908년 사이 네 건의 재판은 의미가 남다르다. 책에 ‘대한매일신보는 민족 진영 대변지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항일 정신을 고취했기 때문에 일제 침략 정책에는 가장 큰 장애물이자 두려운 존재였다’고 소개할 만큼 일제는 ‘눈엣가시’였던 신문을 통제하려고 했다. 통감부는 신문을 통해 소요와 무질서를 조장했다며 배설을 두 차례 재판에 넘겼고, 주필 양기탁에게는 국채보상운동 보상금 횡령 혐의를 씌워 재판에 넘겼다. 결국 무죄를 받은 배설은 자신들의 횡령 의혹을 다룬 일본 통신 기사를 그대로 베껴서 낸 중국 발행 영자 신문 노스차이나 데일리뉴스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승소하기도 했다. 정 교수는 당시 대한매일신보에 소개된 공판 기록을 비롯해 일본과 영국, 상하이 현지 언론 및 법정 기록을 꼼꼼히 모아 네 건의 재판을 생생하게 재연했다. 특히 상하이에서 열린 네 번째 재판를 다룬 기록이 모두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정 교수는 “네 건의 재판은 신문을 둘러싸고 영국과 일본, 한국이 관련된 최초의 국제 재판으로 국제 관계 사법사, 외교사, 독립운동사, 항일 의병 투쟁사, 국채보상운동, 언론사까지 통틀어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1908년 배설의 두 번째 재판은 상하이 주재 영국고등법원 검사와 판사가 서울에 와서 참여한 가운데 4일간 진행됐다. 피고인 배설, 일본 고베에서 온 영국인 변호사, 이토 히로부미의 위임을 받은 고소인 미우라 야고로, 증인 양기탁, 영어 통역 김규식, 의병장 민종식 등 당시 역사의 중심에 있던 이들이 한데 모여 드라마를 방불케 한다.

정 교수는 “대한매일신보는 그저 뉴스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본이 ‘배설 때문에 의병이 소요를 일으켰다’, ‘대한매일신보가 국채보상운동과 신민회의 비밀 본부’라고 주장할 만큼 항일 의식을 담았다”며 “단순한 목격자가 아닌 역사를 움직인 본산”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독일 나치의 만행을 폭로한 오스카르 쉰들러 같은 역할을 했던 배설에게 오랜 관심을 가져 온 이유다.

1985년 영국 런던정경대 유학 시절에도 영국 관공서와 도서관 등을 샅샅이 뒤지며 배설을 탐구하는 등 반평생 대한매일신보의 기록을 좇았던 정 교수는 “발굴을 시작했으니 멈춰선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연구는 마무리했지만 유튜브 강의 콘텐츠를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당시 신문의 가치와 역사를 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허백윤 기자
2022-02-17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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