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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만으로 환호하는 인간… 과학도 소설이 된다

‘발견’만으로 환호하는 인간… 과학도 소설이 된다

허백윤 기자
허백윤 기자
입력 2022-01-27 19:26
업데이트 2022-01-28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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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학자들의 잇단 ‘가짜 발견’
80여년간 철회된 논문만 4449개
데이터 과장·오류·조작 62% 달해
논문 발표 횟수로 연구비 제공 관행
쪼개기 발표·의도적 조작까지 조장
반복 검증·철저한 동료 평가 못해

사이언스 픽션/스튜어트 리치 지음/김종명 옮김/더난 출판/496쪽/1만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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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드는 과학자들의 연구는 뜨거운 열광을 부른다. 그러나 그들도 곧 인간이기에 좀더 신중하고 철저하게 검증을 반복하지 않으면 오류와 조작에 빠져들고 과학이 세상을 속이는 사기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되새겨야 한다. 왼쪽 사진은 책 속 주요 사례로 거론된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2005년 줄기세포 연구 조작 의혹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모습. 서울신문DB
세계를 뒤흔드는 과학자들의 연구는 뜨거운 열광을 부른다. 그러나 그들도 곧 인간이기에 좀더 신중하고 철저하게 검증을 반복하지 않으면 오류와 조작에 빠져들고 과학이 세상을 속이는 사기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되새겨야 한다. 왼쪽 사진은 책 속 주요 사례로 거론된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2005년 줄기세포 연구 조작 의혹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모습. 서울신문DB
황우석. 여전히 이 이름을 들으면 머리가 얼얼해지는 이들이 있을 테다. 복제 소 연구를 비롯해 획기적인 발표로 인기를 얻은 황우석 전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2004년 ‘사이언스’에 인간 체세포를 이용한 배아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는 논문을 발표하며 세계를 들썩이게 했다. 국내에선 기념 우표와 위인전까지 나올 만큼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았다. 당뇨, 파킨슨병 등 난치병 환자들에겐 한 줄기 희망 그 자체였다. 그런데 1년여 만에 논문이 가짜였음이 밝혀졌으니 누구도 깨고 싶지 않았을 ‘황우석 신화’는 거품처럼 사라졌고, 그 충격은 오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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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인간이 권위에 복종하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복종 실험’을 연구한 스탠리 밀그램 예일대 교수 이야기를 다룬 2015년 영화 ‘밀그램 프로젝트’(익스페리멘터)의 장면.  서울신문 DB
평범한 인간이 권위에 복종하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복종 실험’을 연구한 스탠리 밀그램 예일대 교수 이야기를 다룬 2015년 영화 ‘밀그램 프로젝트’(익스페리멘터)의 장면. 서울신문 DB
심리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에서 강의하는 저자는 저명한 학자들의 ‘발견’이 결코 무결하지 않다며 조작과 과장, 오류가 난무하는 연구들을 폭로한다. 황 전 교수를 비롯해 발견과 몰락 모두 크나큰 충격을 줬던 저명한 학자들의 실험에 어떤 오류와 과장, 조작이 있었는지 낱낱이 소개한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의 프라이밍 현상(점화효과·선행 자극이 나중에 제시된 자극에 영향을 주는 현상)에 대한 실험은 반복 재현해 본 결과 ‘통계적 우연’에 따른 것이었고, 모의 감옥에서 간수와 죄수로 역할을 나누자 간수들이 너무 가학적으로 죄수들을 학대해 일찍 중단해야만 했다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사전에 간수 역할 청년들에게 자세한 지침을 줬던 것으로 드러났다. 인공 기관지 이식 연구 성과를 자랑한 이탈리아 의사 파올리 마키아리니의 논문 7편 속 환자들은 심각한 합병증에 시달리거나 수술한 지 몇 달 안에 사망했다.

단지 일부 유명 학자들의 개인적 일탈이었을까. 아니다. 2012년 미국 공공과학 도서관 온라인 학술지 ‘플로스 원’에 따르면 1928년부터 2011년 사이 철회된 논문이 4449개에 이르는데, 그 사유로 ‘의심스러운 데이터·해석’이 42%, ‘데이터 조작 등 연구 부정행위’가 20%에 달했다. 게다가 각종 저널에 발표됐다 철회되는 논문 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늘었다. 많은 연구자가 오류를 범하고 대범한 조작까지 서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학자들이 연구윤리를 바로 세운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라는 건데, 저자는 무엇보다 연구 시스템 전반을 고쳐야 한다고 꼬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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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과학은 사회적 구조물”이라고 강조한다. 팀을 이뤄 연구한 새로운 발견을 강의나 콘퍼런스, 세미나에서 발표한 뒤 논쟁 및 공유하고 동료 평가를 거쳐 학술지에 발표하는 모든 과정이 결국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뤄진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회적 구조물이기 때문에 과학자들의 오류를 양산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고도 비판한다. 논문 발표 횟수로 연구비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학계 관행 때문에 과학자들은 명성을 얻고 좀더 새롭고 자극적인 발표를 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23쌍 염색체에 대한 분석 결과를 23개 단일 논문으로 쪼개서 발표하는 식의 ‘살라미 슬라이싱’부터 데이터 과장, 연구자의 편향과 부주의, 의도적 조작까지 해내는 대범함을 시스템이 조장하는 부분도 크다는 것이다. 같은 연구를 반복 재현해 검증을 거듭하고, 철저한 동료 평가를 거치며 이미 발표된 논문도 잇따라 의심해 가야 하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새로움과 흥미가 떨어지게 된다.

과학의 발견이 언제나 사실이고 모두에게 이롭길 바라는 마음을 지키려면 학자들의 연구를 액면 그대로 믿어선 안 된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과학도 인간이 하는 것이기에 보다 신중하고 철저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비단 학계와 연구자뿐 아니라 ‘발견’에 환호하는 사회 전반에 일침을 준다.

허백윤 기자
2022-01-2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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