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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소송 제기한 수험생들 집단지성으로 오류 이끌어…평가원 공신력 도마에

수능 소송 제기한 수험생들 집단지성으로 오류 이끌어…평가원 공신력 도마에

박상연 기자
박상연 기자
입력 2021-12-12 18:31
업데이트 2021-12-12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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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들, 생명과학Ⅱ 문항 오류 짚어내
국내외 전문가들에게 직접 연락·자문
“평가원에 책임감과 신뢰 회복 촉구”
“수시 일정 연기... 응시자 모두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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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변론기일 마친 수험생과 소송대리인
첫 변론기일 마친 수험생과 소송대리인 수능 생명과학Ⅱ 응시자 92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제기한 정답 결정 처분 취소 소송의 첫 변론 기일이 열린 10일 오후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재판을 마친 수험생과 소송대리인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12.10 연합뉴스
수능 체제 도입 이후 사상 처음으로 출제된 수능 문제의 정답 결정을 보류하는 사태가 벌어지며 일부 수험생들의 성적 확인 및 대입 일정이 차질을 빚고 있다. 문제의 생명과학Ⅱ 과목 응시자 92명은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정답결정처분 취소 행정소송과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평가원에 대한 공신력도 타격을 입게 됐다.

지난달 18일 치러진 2022학년도 대입수학능력시험에서 이과 수험생들이 응시하는 과학탐구 영역 8과목 중 하나인 생명과학Ⅱ의 20번 문항을 두고 문제 오류가 제기됐다. 해당 문항은 동물 한 종의 두 집단에 대한 유전적 특성을 분석해 멘델 집단(멘델의 유전법칙이 적용되는 집단)을 가려내는 문제다. 오는 17일 해당 문항 정답 오류에 대한 법원의 1심 판결 여부에 따라 생명과학Ⅱ 응시자 6515명의 입시 결과가 영향받을 수 있어 문제 자체의 오류 가능성에 관심이 쏠렸다.

정답 보류 소송에 참여한 수험생들은 향후 수시·정시 등 입시 일정을 준비하면서도 해당 문항에 오류가 있다는 점을 공론화하며 평가원에 책임있는 대응을 촉구했다. 정답결정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기획하고 이끈 수험생 A양은 “수능 문제 이의제기를 한 후 평가원에서 보낸 답변서를 보니 객관적인 근거는 없고 ‘이상 없다’는 억지로만 느껴졌다”며 “이번 사안을 쉽게 넘기면 평가원의 권위적인 태도가 개선되지 않을 것 같아 소송을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평가원은 지난달 29일 2022년도 수능 문제 및 정답에 대한 이의신청 답변자료를 공개하며, 논란이 된 생명과학Ⅱ 문항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자료 캡처.
평가원은 지난달 29일 2022년도 수능 문제 및 정답에 대한 이의신청 답변자료를 공개하며, 논란이 된 생명과학Ⅱ 문항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자료 캡처.
평가원은 해당 문항의 이의신청 답변 자료에서 “관련 분야 학회와 다수 외부 전문가들에게 자문 의견을 구했고 종합적으로 검토·심의했다”며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더라도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을 준거로 학업 성취 수준을 변별하기 위한 평가 타당성이 유지된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일부 수험생들이 지적한 문항의 설정 오류를 고려하더라도 답을 선택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수험생들은 평가원이 자문을 구했다고 밝힌 학회와 외부 전문가 명단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문항 관련 공식 풀이·해설도 없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A양은 “평가원이 좀 더 수험생을 존중하며 신뢰를 회복하려는 모습을 기대한다”며 “수험생들은 1년 동안 평가원을 신뢰하고 시험을 준비하는데, 이전 기출 문제에서 다뤘던 조건도 부정하는 시험 문항을 내는 건 약속과 신뢰를 저버리는 태도”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소송인단이자 수험생인 백모(20)씨도 “평가원 측은 수능 문제 논란을 반기지 않아 이전부터 문제 이의제기를 해도 답변이 명확하지 않고 얼버무리며 넘어가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며 “학생들의 응시료로 문제를 만드는 국가적 시험이고, 사회 진입 첫 단계에서 치르는 중요한 시험인데 결과 중심주의적인 대처만 보여주는 것 같아 교육 측면에서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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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성적 통지‥‘생명과학Ⅱ’ 공란 처리
수능 성적 통지‥‘생명과학Ⅱ’ 공란 처리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정답 결정을 유예하라는 법원 결정이 내려지면서 이 과목을 선택한 수험생들의 성적 통지가 보류됐다. 2021.12.10
뉴스1
학생들은 국내외 대학교수 및 학회, 고교 생물 교사 등에 해당 문제의 오류 여부를 자문하고 있다. 한 수험생은 미국 명문대학교의 생물학 등 전공 교수들 이메일 주소 리스트를 직접 정리해 해당 문제가 오류가 없는지 질의했으며, 이에 집단유전학 전문가인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조너선 프리처드 석좌교수는 지난 11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해당 문항이) 수학적 역설이 있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소송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인스타그램과 카카오톡 단체대화방 등을 운영하며 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게끔 문제점을 쉽게 비유해 설명하고, 소송 관련 진행 상황도 공유하고 있다.

한편 해당 문항에서 정답 처리를 받은 응시자들 사이에서는 ‘정답이 유효하다’는 반발도 나온다. 기존 정답자와 소송인단 수험생들 사이의 갈등으로 번질 수 있어 평가원의 책임 있는 자세가 더욱 요구되는 상황이다. 입시학원 관계자 B씨는“해당 문항에 오류가 있는 건 분명하지만, 정답을 선택한 학생들 역시 시험을 보며 고민 많이 했을 것”이라며 “이 한 문제로 수시 전형 일정도 미뤄지는 등 전체 수험생 44만여명 모두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법원이 오는 17일 생명과학Ⅱ 문항 정답 결정 판단을 내리면 생명과학Ⅱ 응시자 6515명의 성적은 선고 결과를 반영해 이날 오후 8시에 발표될 예정이다.
박상연 기자 spark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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