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환 선수 호르몬 수치 기준 없애야”…IOC 새 권고안 발표

“성전환 선수 호르몬 수치 기준 없애야”…IOC 새 권고안 발표

신진호 기자
신진호 기자
입력 2021-11-17 14:09
업데이트 2021-11-1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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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구속력은 없어…각 경기단체 자율로 기준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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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여자 역도 국가대표로 도쿄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로렐 허버드.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허버드는 올림픽 사상 첫 성전환 선수다.  AP 연합뉴스
뉴질랜드 여자 역도 국가대표로 도쿄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로렐 허버드.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허버드는 올림픽 사상 첫 성전환 선수다.
AP 연합뉴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선수들의 국제대회 출전 자격 조건에서 남성호르몬 수치 기준을 없애도록 권고했다.

IOC는 16일(현지시간) 성전환 선수와 성 발달 차이가 다른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권고안을 발표했다.

수술→남성호르몬 수치 등 기준 점점 완화
IOC는 2004년 5월 ‘스톡홀름 합의’를 통해 성전환 수술을 받은 선수의 올림픽 출전을 허용했다.

성전환 수술 여부, 바뀐 성별의 법적 인정, 최소 2년간의 호르몬 치료 등의 요건이 붙었지만 성전환 선수의 국제 스포츠 대회 출전을 처음으로 허용하는 결정이었다.

경쟁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다. 특히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경우 근육 발달 등의 측면에서 유리할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러나 스포츠에 있어 타고난 생물학적 성으로만 기회를 제한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 성전환 선수의 스포츠 대회 출전 허용에 길이 열렸다.

2015년에는 ‘성전환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사라지고 대신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혈중농도를 새로운 조건으로 삼았다.

높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여자 선수들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선수들의 경우 다른 선수들과의 형평성 차원에서 이를 통제하고 일정 농도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는 기준을 마련한 것이다.

“호르몬 수치만 갖고 경기력 예단 안돼…건강 문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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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여자축구 대표팀 퀸
캐나다 여자축구 대표팀 퀸 2020 도쿄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딴 캐나다 여자축구 대표팀 퀸. 퀸은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선수다.
퀸 인스타그램
그러나 경기력과 관련해 다른 변수들의 통제 없이 테스토스테론 수치만 가지고 경기 성적에 대한 영향을 판단하는 것은 비약이라는 반론도 제기됐다.

IOC는 이날 브리핑과 가상 질의응답을 통해 기존 지침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일리가 있다고 인정했다.

IOC는 “여성들이 경기에 나서기 위해 호르몬 수치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밝혔다.

IOC는 최근 2년간 250명 이상의 선수 및 인권단체, LGBT 관련 전문가 및 과학자들과 논의를 거친 끝에 새로운 권고안을 마련했다.

새로운 권고안은 ▲포용 ▲피해 방지 ▲비차별 등 10개의 원칙을 기반으로 마련됐으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끝난 뒤 적용될 예정이다.

성전환 선수들, 새 권고안 환영
다만 IOC는 이번 권고안이 법적인 구속력은 없다고 밝혔다.

성전환 선수의 출전 자격을 어떻게 정할지는 각 경기단체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각 경기단체에서 공정하고 안전한 경쟁에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성전환 여자 선수들의 출전에 여전히 일정한 제한을 둘 수 있도록 한 것이다.

IOC의 새로운 권고안에 성전환 선수들은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철인 2종 경기 세계선수권대회에 미국 대표팀 사상 첫 성전환 선수로 출전했던 크리스 모지어는 “IOC의 새로운 권고안은 어떤 선수도 내재된 이점을 갖고 있지 않음을 분명히 했다. 테스토스테론 수치에 초점을 맞춘 출전 자격 기준은 위해하고 학대적 요소가 있는 성별 검사를 야기했다”고 트위터에 적었다.

캐나다 여자축구 대표팀으로 2020 도쿄올림픽에 참가해 금메달을 땄던 성전환 선수 퀸도 IOC의 새 권고안에 대해 “획기적”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선천적 남성호르몬’ 女선수 논쟁도…육상연맹 “지침 안 바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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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터 세메냐
캐스터 세메냐 선천적으로 남성 호르몬 수치가 높게 태어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여자 육상선수 캐스터 세메냐.
UPI 연합뉴스
올림픽 금메달 2개(2012년 런던·2016년 리우데자네이루)를 따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여자 육상 중장거리 선수 캐스터 세메냐는 도쿄올림픽에서 주 종목 800m에 출전하지 못했다.

세메냐는 여자로 자랐지만 선천적으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상태다.

세계육상연맹이 400m, 400m 허들, 800m, 1,500m, 1마일(1.62㎞) 등의 종목에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면서 출전 요건에 테스토스테론 수치 기준(을 정하고 있다.

세메냐는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낮추는 시술을 거부했고, 세계육상연맹과 이를 두고 법적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일반 여성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0.12∼1.79n㏖/L(나노몰), 남성의 수치는 7.7∼29.4n㏖/L이다.

세계육상연맹이 정한 출전 기준은 5n㏖/L 이하다.

세메냐 외에도 나미비아의 크리스틴 음보마 역시 여성으로 태어나 살아가고 있지만 선천적으로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일반 여성보다 3배 이상 높다.

음보마는 2020 도쿄올림픽에서 200m 종목에 출전해 은메달을 딴 바 있다.

새로운 권고안을 세계육상연맹이 받아들이면 세메냐는 호르몬 수치를 낮추는 시술을 받지 않아도 올림픽에서 원하는 종목에 출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러나 세계육상연맹은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질의에 테스토스테론과 관련한 현 지침을 바꿀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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