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아파트 동간 거리/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아파트 동간 거리/임창용 논설위원

임창용 기자
임창용 기자
입력 2021-11-01 20:10
수정 2021-11-02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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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아파트 방 뒤편 창의 블라인드를 내리다가 간혹 민망한 장면에 맞닥뜨리곤 한다. 나는 5층에 사는데 뒷동의 3층이나 4층 가정의 거실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게 문제다. 속옷 차림으로 왔다 갔다 하거나 TV를 보는 장면이 여과 없이 눈에 들어온다. 대체로 밤이 되면 커튼이나 블라인드를 치지만 가끔 열어 놓았을 때 그렇다. 내가 사는 동과 뒷동의 거리는 30m에 불과하다.

요즘은 조망권을 더 확보하기 위해 아파트를 남동이나 남서향으로 비껴서 배치하는 데가 많다. 우리 아파트도 그렇다. 이렇게 하면 어느 정도 앞동으로부터의 시선에서 벗어나게 하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아파트가 점점 고밀화하고 동간 거리가 짧아지면서 이런 효과도 한계에 부닥친 것 같다.

전문가들은 고층아파트의 적정 동간 거리를 70~80m로 본다. 이 정도 돼야 적절한 조망권과 일조권, 사생활 보호가 가능해서다. 하지만 요즘 짓는 아파트 중 이 조건을 맞춘 곳은 거의 없다. 경기도 광교나 동탄, 판교, 인천 청라, 세종 등 서울보다 비교적 사정이 나은 신도시도 동간 거리가 30m 남짓인 곳이 적지 않다. 일부 아파트 중엔 16m에 불과한 곳도 있다. 어떻게 하든 건축 관련 법령을 지키긴 하기 때문에 업자들을 탓할 수만도 없다.

한데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그나마 유지되었던 최소한의 사생활 보호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동간 거리 조건을 크게 완화한 건축법 시행령이 오늘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높은 건물의 남동·남서·정남쪽에 낮은 건물이 배치되면 낮은 건물 높이의 0.5배나 높은 건물 높이의 0.4배 중 긴 거리를 떨어트려야 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낮은 건물의 0.5배만 떨어트리면 된다. 만약 80m 건물의 남쪽에 30m 건물이 있을 때 이격 거리는 기존의 32m(80m의 0.4배)에서 15m(30m의 0.5배)로 줄어든다. 낮은 건물이 높은 건물의 정서 방향에 있으면 이격 거리가 현행 40m에서 15m로 줄어든다.

국토부는 사생활 보호와 화재 확산 방지 등을 위해 최소 동간 거리(10m)는 유지토록 했다. 사람들의 시력이 일제히 떨어지지 않는 한 10m 거리의 거주 공간에서 과연 내 프라이버시가 보호될 수 있을까.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집이 부족한 상황에서 도심 고밀도 개발이 불가피한 측면은 있다. 그래도 무차별적인 고밀도 아파트 짓기는 고민해 볼 여지가 크다. 주거 환경을 무시한 고밀도 개발만 고집하면 우리 아파트들도 악명 높은 홍콩의 ‘닭장 아파트’로 전락하지 말란 법이 없다. 도심 역세권의 고밀도 개발은 어쩔 수 없다 해도 외곽이나 신도시 등은 쾌적한 주거 환경을 유지하도록 법령을 보완했으면 싶다.
2021-11-0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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