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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운동하는 여자들/조이한 아트에세이스트

[열린세상] 운동하는 여자들/조이한 아트에세이스트

입력 2021-08-05 17:30
업데이트 2021-08-06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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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한 아트에세이스트
조이한 아트에세이스트
뉴스나 볼까 하고 틀었던 TV에서 올림픽 남자 높이뛰기 결승전을 하고 있었다. 도구의 도움 없이 인간이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높이를 넘는 놀라운 장면에 매료됐다. 그러다 보게 된 장면. 한 남자 선수가 트랙에 대(大) 자로 뻗은 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긴장을 푸는 나름의 방법이었다. 그 장면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의문이 들었다. 만약 여자 선수가 운동장에서 저렇게 다리를 있는 대로 벌리고 누워 있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조신하지 못하다, 남사스럽다, 페미냐? 메달 뺏어라… 하는 소리가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또 하나의 장면. 그 선수들은 소매가 없는 운동복을 입고 있었는데 경기 전에 팔을 올려 관중으로부터 박수를 유도하는 제스처를 취하곤 했다. 들어 올린 팔과 함께 무성한 겨드랑이털이 보였다. 누구도 그 털에 신경 쓰지 않았고, 그건 매우 자연스러웠다. 나는 또 질문이 떠올랐다. 여자 선수들 가운데 저렇게 겨드랑이털을 무신경하게 보이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던가? 여자 선수들도 소매 없는 유니폼을 입지만 어디서도 털을 본 기억이 없다. 예전에 책에도 쓴 내용이지만 서양 미술에서는 19세기 중반이 되기까지 여성의 누드에 털을 그리지 않았다. 남자들이 생각하는 여성의 이상적인 몸에는 털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문화권에서는 지금도 여성이 머리털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아직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카메라 앞에서, 운동 경기에서 아무렇지 않게 다리를 벌리고 눕고 겨드랑이털을 보이고 누군가 자신을 보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오직 경기에만 집중하는 듯 보이는 남자들과 몸에 딱 붙거나 몸매를 드러내는 유니폼을 입어야 하고, 겨드랑이털도 제거해야 하며, 아무리 땀을 흘리더라도 화장을 하고, 인터뷰할 때 상냥한 표정을 지어야 하는 여자 선수들은 기본 출발선이 다르다. 누가 그러라고 했냐고? 당장 기사 검색만 해봐도 우리 사회가 여자 선수들에게 어떤 잣대를 들이대는지 줄줄이 나온다.

‘골 때리는 여자들’이라는 예능 프로를 본다. 축구를 처음하는 여자들이 공을 차면서 생의 희열을 느끼고 승부욕에 불타며 운동에 열정을 느끼는 과정들이 재밌고 감동적이다. 월드컵도 안 보는 내가 여자축구 예능 경기를 보면서 울고 웃는다. 프로선수들의 화려한 기술과 속도와 힘은 없지만, 나이 많은 사람도 있고 아이를 낳은 사람도 있으며 직업상 매 끼니 식사량을 극단적으로 조절해야 하는 사람도 있는 여자들의 운동경기가 더욱 대단하다고 느끼는 건 그녀들이 브라를 하고 뛰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브라가 너무나 답답해서 스포츠 브라는 편하지 않을까 싶어 매장에서 입어 봤다가 기겁을 한 적이 있다. 스포츠 브라는 몸 움직이기 편한 브라가 아니라 더욱 가슴을 죄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올림픽에 나온 여자 선수들도 남자들은 단 하루도, 아니 단 몇 시간도 버티지 못할 그 브라를 하고 초집중을 해서 뛰고, 차고, 쏘고, 들고, 찌르고, 구르고, 난다. 대단하지 않은가.

12살인 여조카가 있다. 운동을 잘한다. 수영을 시켰더니 선수 만들 생각 없냐는 제안을 받았다. 기계체조도, 암벽등반도 겁없이 잘하며 춤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여자는 운동을 잘하는 게 자랑이 아니었다. 축구나 야구는 남자들만 하는 운동이었고, 달리기를 비롯한 모든 운동은 ‘당연히’ 남자가 더 잘하며, 역도를 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이야 여자도 못 하는 운동이 없으며 근육질 몸매를 자랑스럽게 여기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여성의 몸은 근육 없이 매끈해야 하고 마를수록 아름답다고 여겼다. 여자는 혼자 있을 때는 장롱도 옮기지만 남자 앞에서는 물병도 못 따는 척해야 한다고 했다. 힘이 센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여자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라디오 사연으로 올라온다.

여자가 정식으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할 수 있게 된 건 1972년이고, 올림픽 여자 마라톤의 시작은 1984년이다. 사람의 신체가 성별에 따라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생각에서 오랜 세월 축적된 인식이나 사회 문화적, 경제적 조건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걸 인류가 알게 된 것은 놀랍게도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2021-08-0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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