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전한 옷 입어야 성폭력 안 당해” 파키스탄 총리 발언 ‘뭇매’

“얌전한 옷 입어야 성폭력 안 당해” 파키스탄 총리 발언 ‘뭇매’

신진호 기자
신진호 기자
입력 2021-04-08 14:04
업데이트 2021-04-08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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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  AP 연합뉴스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
AP 연합뉴스
TV 생방송 중 성폭력 대책 묻자
“유혹 없애려면 옷 얌전히 입어야”
“성폭력은 외국 음란물 증가 때문”


시민들 분노…인권위 “무지 드러내”

정부의 성폭력 대책을 묻는 질문에 “여성들이 옷을 얌전히 입어야 한다”고 답한 파키스탄 총리가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8일 영국 BBC방송과 EFE통신 등에 따르면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는 지난 주말 TV 생방송 인터뷰에서 ‘정부가 성폭력을 막기 위해 무슨 조치를 했느냐’는 질문에 피해자 책임을 강조하는 취지의 답변을 늘어놓았다.

문제 발언에 시민단체 “총리가 강간문화 조장”
이날 시민과의 질의 시간에서 해당 질문을 받은 칸 총리는 “모든 사람이 의지력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여성들은 유혹을 없애기 위해 옷을 얌전하게 입어야(dress modestly) 한다”고 답했다.

이어 “우리의 종교가 베일을 쓰도록 했다면, 그 이면엔 가족제도를 유지하고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철학이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파키스탄은 이슬람교를 국교로 삼고 있다.

그는 여성과 어린이를 상대로 한 범죄를 규탄하면서도 그 원인을 음란물 증가 탓으로 돌렸다. 칸 총리는 “성폭력은 인도와 서구, 할리우드 영화 등 음란물이 증가한 결과”라고 진단했다.

칸 총리의 발언은 여성단체와 인권단체는 물론 시민들의 광범위한 분노를 일으켰다.

이들은 “총리가 성폭력의 원인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부정확하고 무감각하며 위험하다”면서 “해당 발언이 강간 문화를 오히려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파키스탄 인권위원회 역시 “강간이 왜, 어떻게 발생하는지에 대해 당혹스러울 만큼 무지를 드러냈고, 강간 생존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했다”고 성명을 냈다.

女운전자 집단강간 사건에 파키스탄 여성들 분노
“여성과 아이들을 보호하라”
“여성과 아이들을 보호하라” 2020년 9월 11일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여성들이 ‘고속도로 집단강간 사건’을 규탄하는 시위에 나서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파키스탄 법원은 고속도로에서 여성 운전자를 끌어내 자녀들 앞에서 집단강간한 남성 2명에 대해 지난달 사형을 선고한 바 있다.

이들은 지난해 9월 9일 밤 파키스탄 북동부 라호르 인근 고속도로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건의 범인들이다.

당시 피해 여성은 어린 두 자녀를 태우고 운전하다 연료가 떨어져 차를 세운 채 친척에게 도움을 요청하던 중이었다. 이때 두 남성이 다가와 차 유리를 부수고 여성을 끌어낸 뒤 아이들 앞에서 여성을 집단 성폭행했다.

사건도 충격적이었지만 수사당국자의 발언은 더 가관이었다.

해당 지역 경찰청장은 “피해자가 남성 보호자 없이 밤에 운전했다”면서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이에 파키스탄 주요 도시에서 여성들이 거리로 나와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 근절을 외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가 가라앉지 않자 파키스탄 정부는 지난해 12월 화학적거세법(성충동약물치료)을 도입하고, 성범죄 전담 특별법원 신설을 통해 중범죄의 경우 사건 발생 4개월 내에 신속하게 재판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같은 조치 속에서도 정부 최고 수장인 총리가 뒤떨어진 성 인식을 드러낸 발언을 하면서 성범죄와 여성 인권을 둘러싼 진통은 계속될 전망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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