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보 1923년 1월 7일자에 실린 전주 기생 광고.
매일신보 1923년 1월 7일자 7면에는 전남 장성·담양군, 함남 갑산군 등의 군수와 면장과 면직원들의 작은 광고들이 광고란을 장식했다. 그런데 그 바로 밑에 ‘전주 기생 일동’이라고 적힌, 다른 신문에서는 볼 수 없는 기생 광고가 실려 눈길을 끈다. 병풍 그림 같은 각각의 수묵화 위에 11명의 기생 실물 얼굴이 게재됐다. 스무 살이 되지 않은 앳된 얼굴부터 서른 안팎의 나이 든 기생까지 모두 한복에 비녀를 꽂은 모습이다. 박화중선(朴花中仙), 황소월(黃素月), 김하엽(金荷葉), 송진주(宋眞珠), 정유선(丁遊仙), 박백운선(朴白雲仙) 등의 이름도 같이 밝혔지만, 그 밖에는 어떤 설명도 없다. 일제강점기에 기생들이 적을 두었던 조합을 권번(券番)이라고 했는데 이들은 아마도 전주권번 소속일 것이다.
광교기생조합처럼 권번의 이름으로 광고를 내는 일은 드물지 않았지만, 기생의 얼굴 실물과 이름을 공개한 광고는 흔치 않았다. 물론 그 후에는 기생 개인이 변호사처럼 ‘개업광고’를 내는 일도 있기는 했다. 당시 기생은 오늘날의 유흥음식점 접대부와는 다른 개념이었다. 판소리를 하고 민요를 부르는 국악인이기도 했고 전파 방송이 없던 시대에 일종의 연예인이기도 했다. 물론 손님에게서 봉사료(화대)를 받는 접객 활동을 했어도 지금보다는 사회적으로 떳떳한 직업이었고, 그랬기에 광고에 얼굴을 공개하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같은 해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는 이 광고가 보이지 않는다. 권번의 주요 고객은 관청에 소속된 공직자였고 그들이 좀더 자주 접했을 매일신보는 기생으로서는 상대적으로 더 나은 광고 효과를 볼 수 있는 매체였을 수 있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2020-12-28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