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람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사람은 사람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이슬기 기자
입력 2020-11-19 17:28
업데이트 2020-11-20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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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연습/수전 최 지음/공경희 옮김/왼쪽주머니/436쪽/1만 5000원

사람은 사람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신뢰는 연습으로 만들 수 있는가. 지난해 한국계 최초로 전미도서상 소설 부문을 수상한 수전 최의 ‘신뢰 연습’은 1980년대 미국 남부의 한 예술고등학교 연극과 학생들의 이야기로 이 추상적인 의문에 접근한다.

카리스마 있는 교사인 킹슬리가 주도하는 ‘신뢰 연습’ 강의는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 신뢰 연습이란 주로 집단 심리 치료에서 구성원들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서로 신뢰하게 만드는 훈련 방식이다. 이를 매개로 열다섯 살 세라와 데이비드는 사랑에 빠진다. 친구들에게는 절대 비밀이었던 둘의 애정 전선은 미묘한 신경전 끝에 파국을 맞는다. 그러나 거듭되는 신뢰 연습에서 킹슬리는 둘을 마주 앉히고 ‘서로에게 솔직하도록’ 강요한다.

각 부의 제목은 모두 ‘신뢰 연습’이지만, 서술 시점이 다르다. 2부에 등장하는 캐런은 1부가 세라의 소설이라고 밝힌다. 고등학교 동창인 두 사람은 14년이 흘러 작가와 독자로 다시 만났다. 1부에서 학교 전체가 주목하는 관계인 것처럼 다뤄지던 세라와 데이비드의 얘기는 2부에서 사라지다시피 하고, 세라의 그늘에 가려졌던 캐런의 서사가 펼쳐진다. 1부의 인물들이 캐런에게서 어떻게 확장되고 축소됐는지 파헤친다. 3부에서는 캐런과 관련된 제3의 인물이 화자로 나와 또 다른 이야기를 그려 나간다.

책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독자들이 스스로의 믿음을 철회하게 만든다. 마지막까지도 무엇이 진실인지 명확한 힌트는 주지 않는 것이 책의 묘미다.

단 책이 지속적으로 주지하는 것은 예술이라는 이름의 폭력이다. 세라의 소설 속 대상화된 캐런의 모습이나, 연기 연습의 일환인 줄 알았던 ‘신뢰 연습’이 실은 타인 앞에서 고통을 전시하는 포르노에 가까웠다는 사실 등이 이를 증명한다. 이들에게 환상성을 부여한, 합의가 전제되지 않은 성적 관계도 마찬가지다. 소설이 내포한 여러 가지 함의를 이해하려면 재독 삼독은 필수로 보인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2020-11-2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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