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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권리, 평등합니까”…형제복지원의 눈물은 뜨거웠다

“인간의 권리, 평등합니까”…형제복지원의 눈물은 뜨거웠다

김헌주 기자
김헌주 기자
입력 2020-10-16 00:06
업데이트 2020-10-16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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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31년 만에 다시 재판

박종철 사건에 밀려 잊혀진 서러움 표출
노역·구타로 513명 사망·일부 암매장
故 박인근 원장, 1989년에 무죄 확정


檢 “특수감금 무죄 파기해달라” 요청
대법 “신중하게 재판” 새달 선고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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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불법 감금과 강제노역, 구타 등을 당한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이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원장이었던 고 박인근씨의 비상 상고심 첫 공판을 방청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번 재판은 박씨가 특수감금 혐의로 기소됐다가 1989년 무죄가 확정된 이후 31년 만에 열렸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1970~80년대 불법 감금과 강제노역, 구타 등을 당한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이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형제복지원 원장이었던 고 박인근씨의 비상 상고심 첫 공판을 방청한 뒤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번 재판은 박씨가 특수감금 혐의로 기소됐다가 1989년 무죄가 확정된 이후 31년 만에 열렸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형제복지원 실체가 만천하에 공개되던 해는 1987년입니다. 그런데 피해자의 호소는 지성인의 죽음과 달리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은 여전히 우리에게 묻습니다. 인간의 권리는 평등한 것인가요?”

15일 오전 대법원 1호 법정. 형제복지원 원장 고 박인근씨의 특수감금 혐의에 대한 비상상고 사건 재판이 열렸다. 사건이 외부로 알려진 지 무려 33년 만에, 그것도 이미 죽은 이의 잘못을 묻는 이례적인 재판이다. 피해자 측 법률 대리인으로 출석한 박준영 변호사는 “이 사건은 피해자들 아픔을 얘기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화면에 띄운 진정서를 읽기 시작했다. 33년 전 피해자가 작성한 진정서다. 진정서에는 “사람을 이렇게 파리 목숨같이 생각하는 이곳을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 국민, 모든 시민이 다 알고 공감을 갖게 할 수 있도록 이 사실을 보도해 줬으면 한다”는 절절한 호소가 담겨 있었다. 당시 박종철군 고문 치사 사건에 밀려 형제복지원 사건이 잊혀지는 것에 대한 서러움도 묻어나 있었다. 법정은 이내 눈물바다가 됐다.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약 3만 8000명의 부랑인들이 수용됐던 전국 최대 부랑인 수용시설이다. 수용자 대부분은 본인 의사에 반해 불법 감금된 시민들로 강제 노역과 구타 끝에 최소 513명이 사망했다. 일부는 암매장됐다.

그러나 원장 박씨는 1989년 무죄가 확정됐고 생존 피해자들의 고통은 30여년간 지속됐다. 피해자들에게 희망이 생긴 건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2018년 11월 대법원에 비상상고를 신청하면서다. 비상상고는 법원의 심판이 법을 어겼을 때 검찰총장이 대법원에 신청할 수 있다.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과거 판결에 법령 위반 사실이 인정되면 원 판결을 파기할 수 있다. 죄가 있다고 한들 죽은 박씨에겐 효력이 미치지 않지만 피해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이날 검찰 측에서는 고경순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이 출석해 재판부에 “특수감금 무죄 부분을 파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내무부 훈령은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명확성의 원칙을 어겨 위법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러면서 고 부장은 “사건 하나하나 밝혀내지 못한 채 특수감금 등 일부 범죄로만 기소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며 법정에 나온 40여명의 피해자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박 변호사는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를 어떻게 기억하고 위로하는가에 따라 새로운 기억과 미래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서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온 피해 생존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에 대한 사회적 참회”라고 말했다. 재판부도 “이 사건은 광범위한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고 사회적, 시대적 아픔이 있는 사건”이라며 “대법원으로서도 신중하게 재판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르면 다음달 선고를 할 것으로 보인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2020-10-16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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