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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겨나간 광고판’이 보여준 ‘뿌리 깊은’ 성소수자 혐오

‘찢겨나간 광고판’이 보여준 ‘뿌리 깊은’ 성소수자 혐오

이근아 기자
입력 2020-08-04 16:28
업데이트 2020-08-04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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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물 훼손으로 본 성소수자 차별·혐오
“명백한 증오범죄···연대로 극복”
‘성소수자 차별 반대’ 신촌역 광고 게시 이틀 만에 훼손돼      (서울=연합뉴스) 2일 오전 서울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 게시된 ‘2020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 대형 광고판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찢어진 상태로 발견돼 임시 철거됐다.      광고판에는 캠페인 참가자들의 얼굴 사진을 이어붙여 만든 ‘성 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사진은 훼손된 신촌역 ‘성 소수자 차별 반대’ 광고판. 2020.8.2 연합뉴스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성소수자 차별 반대’ 신촌역 광고 게시 이틀 만에 훼손돼
(서울=연합뉴스) 2일 오전 서울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 게시된 ‘2020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 공동행동’ 대형 광고판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게 찢어진 상태로 발견돼 임시 철거됐다.
광고판에는 캠페인 참가자들의 얼굴 사진을 이어붙여 만든 ‘성 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사진은 훼손된 신촌역 ‘성 소수자 차별 반대’ 광고판. 2020.8.2 연합뉴스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최근 서울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 붙은 성소수자 차별 반대 광고물이 게시된 지 이틀 만에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성소수자와 이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은 광고가 찢긴 자리에 응원 포스트잇을 붙였지만 이조차 하루 만에 뜯겼다. 찢겨나간 광고판은 성소수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차별·혐오적 시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재물을 손괴한 단순 사건이 아니라 명백한 증오범죄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경찰 등에 따르면, 광고물을 훼손한 혐의(재물손괴)를 받는 20대 남성은 지난 3일 서울 마포경찰서에서 이뤄진 조사에서 “성소수자들이 싫어서 광고판을 (커터칼로) 찢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다만, 추가로 이뤄진 포스트잇 훼손 혐의는 부인했다. 경찰은 폐쇄회로 (CC)TV 분석 등 추가로 조사하고 있다. 광고물은 복구됐고 오는 31일까지 게재된다.
성소수자 차별 금지 광고물이 훼손된 자리에 시민들의 연대 포스트잇이 붙어있는 모습. 시민들은 ‘누구든 안전한 일상에서 살아갈 권리는 있습니다’, ‘우리의 존재를 지우지 마세요’ 등의 연대 메시지를 적어 붙였다. 출처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공식 페이스북
성소수자 차별 금지 광고물이 훼손된 자리에 시민들의 연대 포스트잇이 붙어있는 모습. 시민들은 ‘누구든 안전한 일상에서 살아갈 권리는 있습니다’, ‘우리의 존재를 지우지 마세요’ 등의 연대 메시지를 적어 붙였다.
출처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공식 페이스북
“차별적 의도가 명백한 증오범죄” 비판 목소리 높아
해당 광고는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맞아 지난달 31일부터 게시됐다. 광고에는 ‘성소수자는 당신의 일상 속에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무지개행동 집행위원 박한희 변호사는 “광고판 훼손은 성소수자는 얼굴을 드러내면 안 되며 동등한 시민으로 대우할 수 없다는 차별적 의도가 담긴 행위”라며 “수사기관이 충동 범죄가 아니라 의도를 가진 증오범죄로 보고 강력히 대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광고는 게시 전부터 서울교통공사가 성소수자 관련 광고는 의견 광고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무지개행동에 한 차례 게시 거부를 통보하며 우여곡절을 겪었다. 박 변호사는 “(공사 측이) 심의를 반려한 이유를 정확하게 말해주지는 않았으나 ‘(광고 관련) 항의 민원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답변을 들었다”면서 “만에 하나 민원이 들어오더라도 성소수자를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는 의도가 깔린 만큼 공공기관이라면 정당한 민원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무지개행동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고, 이후 서울교통공사는 광고 개시 결정 허가 통보를 전달했다.

찢기고 게시 불허 당하고… 공공연히 이뤄진 ‘성소수자 향한 공격’
이러한 과정을 거쳐 게시된 광고물은 결국 이틀 만에 훼손되며 또 다른 차별의 벽에 부딪혔다. 이처럼 성소수자를 향한 공격은 과거부터 공공연히 이뤄져 왔다. 대학 내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반복됐다. 2016년 3월에는 서울대 성소수자 동아리가 게시한 ‘관악에 오신 성소수자, 비성소수자 신입생 여러분 모두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찢긴 채 발견됐다.

지난해 2월 숭실대에서는 학내 성소수자 동아리가 ‘숭실에 오신 성소수자·비성소수자 모두를 환영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게시하려다가 학교 측의 불허로 무산되기도 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올해 4월 “성적 지향을 이유로 한 게시물 게재 불허를 중지하고, 표현의 자유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교내 게시물 관련 규정을 개정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해당 동아리인 ‘이방인’ 관계자는 “학교 뿐만이 아니라 학우들도 혐오를 직접적으로 표출하거나 ‘조용히 살면 되지 않느냐’는 발언을 한다”면서 “이번 광고물 훼손 사건 역시 사회가 그간 적극적으로 혐오를 바로 잡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성소수자가 주변에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는 이유만으로 공격 받지 않도록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학·청년성소수자모임연대 QUV의 기진 활동가 역시 “단순히 성소수자가 곁에 함께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광고와 현수막임에도 마치 논쟁적인 사안처럼 여겨지는 것은 그 자체로 차별적”이라고 설명했다.
(서울=뉴스1) 민경석 기자 = 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 2020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IDAHOBIT) 공동행동 측이 게시한 성소수자 차별 반대 캠페인 광고판 에 훼손을 막기 위한 메시지가 적혀 있다. 해당 광고판은 게시된 지 사흘만에 두 차례 훼손을 겪었지만 지난 3일 오후 복구돼 오는 31일까지 게시될 예정이다. 2020.8.4/뉴스1
(서울=뉴스1) 민경석 기자 = 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 2020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IDAHOBIT) 공동행동 측이 게시한 성소수자 차별 반대 캠페인 광고판 에 훼손을 막기 위한 메시지가 적혀 있다. 해당 광고판은 게시된 지 사흘만에 두 차례 훼손을 겪었지만 지난 3일 오후 복구돼 오는 31일까지 게시될 예정이다. 2020.8.4/뉴스1
연대로 극복하는 성소수자 혐오·차별
이러한 일들이 발생할 때마다, 성소수자들과 그를 지지하는 시민들은 연대로 힘을 모으고 있다. 광고물 훼손 뒤 자발적 참여로 응원 메시지가 담긴 포스트잇이 빈 자리를 채우고, 광고물 복구 이후에는 혹시라도 발생할 추가 훼손에 발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시민감시단 활동도 서로 독려하고 있다. 기진 활동가는 “2016년 서울대 현수막이 찢겨나갔을 때 그 자국을 반창고로 붙이는 행동을 학우들과 했듯, 이번에도 많은 시민 분들이 연대해주어서 자긍심을 느꼈다”면서 “지지해주는 시민들도 많은 만큼 한국에서 증오범죄가 더 이상 발 붙일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박 변호사 역시 “훼손된 광고물에 포스트잇을 붙이는 동안에도 지나가던 시민 분들이 먼저 ‘안타깝다’ 등 위로의 말을 건넸다”면서 “이 사건으로 성소수자들이 어떤 현실에 놓여 있고, 무엇이 문제인지 사회에 알리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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