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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한 번도 경험해 보고 싶지 않았던 나라/황수정 편집국 부국장

[서울광장] 한 번도 경험해 보고 싶지 않았던 나라/황수정 편집국 부국장

황수정 기자
황수정 기자
입력 2020-07-23 21:02
업데이트 2020-07-26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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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정 편집국 부국장
황수정 편집국 부국장
2017년 4월 대선 후보로 뛰던 문재인 대통령이 ‘5G’를 ‘오지’라 읽었다가 곤욕을 치렀다.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이 “파이브지”라고 해야지, 갖은 면박이 쏟아졌다. 그때 “오지가 어때서?” 감쌌던 사람, 내 주위에도 숱했다. 그랬던 사람들이 소탈해서 좋다던 문 대통령의 언어 사용법을 불편해한다.

다음달 17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귀중한 휴식을 드리고자 한다”고 굳이 메시지를 알렸다. 앉은 자리에서도 몇천만원씩 전세금이 뛰는데, 영영 무주택자 될까봐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사는 판인데. 대통령은 지금 따뜻한 언어로 국민과 밀월을 이어 가자 할 때가 아니다.

소문이 갈수록 고약해진다. “6ㆍ17 한평생 내 집 마련 금지대책.” “이러다 부동산 대책 카드(현재 22장)로 포커 치겠네.” 이런 체념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부는 집값 잡을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 집값이 올라야 보유세 양도세 취득세 온갖 이름의 세금폭탄을 때릴 거니까.” 세금징수론쯤은 그래도 양호했다. 양극화 기획 음모론은 무섭다. 다주택 팔라고 하면서 살 만한 집이나 수도권 대출은 다 묶어 놨다, 괜찮은 집은 현금 부자들만 ‘줍줍’해서 금수저 자식에게 주라는 얘기다, 서민들 기회 빼앗아 부자들 몰아주는 초양극화 정책이다, 중산층 무너져야 집 없는 서민들이 진보 정권에 계속 기댈 거 아니냐…. 추문은 꼬리를 물어 정치에 관심 없는 주부들 입에서조차 옮겨다닌다.

청와대는 팔짝 뛸 노릇일지 모른다. 소문의 진위는 중요하지 않다. 정책의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는 사실이 팔짝 뛰게 두려울 일이다. 청와대 비서실 참모 교체설만 해도 그렇다. 뭐가 문제인지 아직도 감 잡지 못하고 있다. 청주와 반포 아파트 사이에서 줄타기하다 강남의 똘똘한 한 채 논란을 불붙인 노영민 비서실장은 유임. 여론을 못 이겨 아파트 두 채를 다 처분하게 된 포상인 모양이다. 강남 아파트 두 채를 계속 붙들고 있다 경질될 거라던 김조원 민정수석도 다시 유임. 마음을 돌려 한 채 처분하겠다니 뒤늦게 받는 보너스인가. 다주택 처분 안 하고 끝까지 뭉갠 이들이 경질되면 그들에겐 탈출구가 열리는 건가. 이런 인사 기준이 사실이라면 국민 분노를 얕잡아 본 것이다. 그들의 이중성에 분노하지만 손목을 비틀어 강남 집 몇 채 내놓게 한다고 ‘이생집망’(이번 생에 집 사기는 망했다)이 없던 일이 되지는 않는다.

다주택 공직자들과 집 안 팔고 버티는 청와대 참모들을 보면 명료해지는 사실이 있다. 진보 정권의 유력자들이 기득권 깊숙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 진실을 그들만 모르거나 모른 척하며 집 부자를 손봐주겠다는 정책만 고집하는 형국이다. ‘1대99’ 이분법의 정책은 엉뚱한 곳으로 유탄을 날리고 있다. 국회 통과를 앞둔 ‘임대차 3법’만 해도 전세금을 아침에 밀어올리고 저녁에 또 밀어올리는 중이다.

갈지자 정책은 집 가진 자와 없는 자, 두 쪽으로만 세상을 가른 게 아니다. 정책의 불확실성은 위에서 아래로 또 그 아래로 시장의 먹이사슬을 맹렬히 가동시킨다. 맨바닥에서 하중을 받는 무주택자와 앞길 구만리 흙수저 청춘들은 꿈꿀 수 있는 것이 ‘환생’뿐이다.

서울 아파트 중간값이 9억원을 넘었다. 대출을 무차별 틀어막고서는 내 집을 엄두 내려면 현금 3억~5억원쯤은 쥐고 있으라 한다. 기득권에 편입된 정책 입안자들이 서민 사정을 알 리 만무하다. 그러니 이런 정책이 꿈쩍않고 버틴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아들을 돈 많이 들기로 소문난 스위스 유학을 어찌 그리 수월히 보냈는지, 윤미향 의원은 무슨 수로 현금만 모아 집을 몇 채나 샀는지. 자꾸 궁금한 이유다.

슈퍼 여당에서 강력한 부동산 법안들을 줄줄이 발의해 놨다. 임대차 계약 무기한 갱신, 아파트 전월세 금액을 지자체장이 정하는 법안도 끼어 있다. 의도가 정의에 가깝다고 어떤 결과든 눈감아 줄 수는 없다. 진보라 믿는 오랜 가치관을 이 와중에 한 번쯤 실험해 보고 싶은 건 아닌지, 정말 전월세 서민들을 도와줄 수 있겠는지 백번 고민부터 해보라 말하고 싶다. “나도 전세 살지만 저건 사회주의 정책 아닌가, 겁난다”는 댓글이 수두룩하다.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빠.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아.” 조지 오웰 ‘동물농장’에나 나올 낡은 프레임에 집 없는 서민을 가두지 말라. 누구를 견제할지가 아니라 누구를 최우선하는 정책을 펼지만 고심해야 한다. 국민 40% 이상이 집이 없는 사람들이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던 문 대통령의 말에 “이런 경험은 한 번도 해 보고 싶지 않았다”고 대꾸하고들 있다.

sjh@seoul.co.kr
2020-07-2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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