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 끌려간 ‘장물 문화재’ 총 없는 전쟁

입력 : ㅣ 수정 : 2019-08-23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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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강, 로제타석 등 식민지 유산 약탈
시장국·원산국 셈법 복잡 반환 난관
한국 소장한 실크로드 벽화도 거론
영국이 약탈한 베닌 왕국의 문화재 중 하나인 15세기 상아 가면. 1977년 나이지리아가 자국에서 열리는 국제행사를 위해 대여를 요청했지만 영국박물관 측은 “온도와 습도 등을 세심하게 관리해야 할 만큼 가면이 매우 상하기 쉬운 상태”라는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을유문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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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이 약탈한 베닌 왕국의 문화재 중 하나인 15세기 상아 가면. 1977년 나이지리아가 자국에서 열리는 국제행사를 위해 대여를 요청했지만 영국박물관 측은 “온도와 습도 등을 세심하게 관리해야 할 만큼 가면이 매우 상하기 쉬운 상태”라는 이유를 들어 거절했다.
을유문화사 제공

그들은 왜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가/김경민 지음/을유문화사/372쪽/1만 6000원

문화재에 대한 정의는 국내법, 국제법에 따라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불변의 공통점도 있다. ‘국가 혹은 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중요한 물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문화재를 약탈당한 이들 입장에선 자신의 혼이 담긴 역사와 문화를 통째 도둑맞았다는 생각을 갖는 게 당연하다. 2011년, 무려 145년 만에 프랑스에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를 대하던 우리의 심정을 떠올리면 알기 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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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 의궤가 우리나라로 반환되긴 했지만 소유권까지 이전된 것은 아니다. 정확히는 ‘5년 단위로 연장이 가능한 일괄 대여 형식’으로 돌아왔다. 우리 입장에서는 수탈했으니 돌려주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한데 그런 단순 논리로는 문화재 반환 문제를 풀 수 없다. 각국의 이해와 셈법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새 책 ‘그들은 왜 문화재를 돌려주지 않는가’는 이 같은 문화재 수탈과 반환에 얽힌 역사를 짚고, 해결 방안을 모색한 책이다.

과거 문화재 약탈을 주도했던 서구 열강과 오늘날 수많은 문화재를 구매할 힘을 갖고 있는 나라들은 대개 일치한다.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러시아, 이탈리아, 벨기에 등이 이른바 ‘문화재 시장국’이다. 일본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들 반대편에 있는 이집트, 인도, 그리스 등은 ‘문화재 원산국’이다. 여기엔 우리나라도 포함된다.

저자는 그 가운데 ‘시장국’을 영국으로, ‘원산국’을 인도,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으로 한정해 논지를 펼친다. 이 사례들이 문화재 약탈사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판단에서다. 영국을 꼽은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은 예나 지금이나 다른 어떤 열강보다 넓은 식민지를 가진 ‘제국적인’ 국가다. 주목받는 유물도 그 어느 나라보다 많다.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의 열쇠가 된 ‘로제타석’, 영국 왕실 왕관에 장식된 인도와 파키스탄의 코이누르 다이아몬드, 범아프리카 차원의 반환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베닌 왕국의 베닌 브론즈 등이 대표적이다.
엘리자베스 2세의 어머니인 메리 왕비의 관에 장식된 108.93캐럿짜리 코이누르 다이아몬드. 왕관 정면 가운데 동그랗고 큰 보석이 코이누르 다이아몬드다. ‘소유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다이아몬드는 여러 강대국의 손을 거쳐 현재 영국 런던탑에 전시돼 있다. 을유문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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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자베스 2세의 어머니인 메리 왕비의 관에 장식된 108.93캐럿짜리 코이누르 다이아몬드. 왕관 정면 가운데 동그랗고 큰 보석이 코이누르 다이아몬드다. ‘소유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다이아몬드는 여러 강대국의 손을 거쳐 현재 영국 런던탑에 전시돼 있다. 을유문화사 제공

영국 북부 엘긴 지방의 백작인 토머스 브루스. 파르테논 신전을 해체해 현재 영국박물관에 ‘엘긴 마블’을 전시하게 한 장본인이다. 을유문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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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북부 엘긴 지방의 백작인 토머스 브루스. 파르테논 신전을 해체해 현재 영국박물관에 ‘엘긴 마블’을 전시하게 한 장본인이다. 을유문화사 제공

중국 신장 투루판의 베제클리크 사원 벽화. 안료가 지워져 훼손된 모습이다. 반면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실크로드 벽화는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이를 반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을유문화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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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신장 투루판의 베제클리크 사원 벽화. 안료가 지워져 훼손된 모습이다. 반면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실크로드 벽화는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이를 반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을유문화사 제공

제국주의 시대가 막을 내린 지금 원산국과 시장국 사이의 첨예한 입장 차이는 ‘소리 없는 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정치·외교적 갈등을 초래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영국과 그리스 사이의 ‘파르테논 마블’ 논쟁이다. 영국의 귀족 토머스 브루스가 1800년대 초 파르테논 신전을 해체한 뒤 200t에 달하는 대리석 조각을 당시 세계 최강이던 해군 함정에 실어 영국으로 옮긴 사건으로, 문화재 약탈에 개인뿐 아니라 영국 정부의 영향력이 방대하게 작용했던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

각국의 반환 요구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여전히 약탈의 합법성과 취득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다. 여러 근거 중 핵심은 “19세기 약탈을 20세기 법으로 단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영국만 시장국이 아니라는 것도 중요한 근거다. 쉽게 말해 여러 시장국이 있는데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다.

책 말미에 시장국으로서 한국의 문제를 지적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우리 국립중앙박물관은 실크로드 문화재를 1500점가량 소장하고 있다. 그중 50여점이 세계 최고 수준의 벽화다. 반면 중국 신장 투루판 등 현지의 벽화들은 안료가 지워지는 등 훼손 상태가 심각한 수준이다. 일각에서 반환 논의가 이어지는 이유다. 저자는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았던 이탈리아의 성공 사례를 본보기 삼아 반환 문제에 나서자고 주장한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2019-08-23 3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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