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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창조하듯… 죽은 돼지의 뇌를 살려냈다

프랑켄슈타인 창조하듯… 죽은 돼지의 뇌를 살려냈다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입력 2019-04-18 02:00
업데이트 2019-04-18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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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연구진, 집돼지 뇌 32개 분리해 실험…죽은 지 4시간 만에 일부 기능 되살려

인식·지각 등 고차원적 기능은 못 살려
‘몸과 분리된 뇌’ 등 윤리적인 논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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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 생산을 목적으로 사육되는 돼지의 경우 동물실험이 금지돼 있으나 최근 돼지의 뇌 복원 연구가 성공함에 따라 가축용 돼지를 이용한 다양한 동물실험이 시도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축까지 실험 대상에 오르며 실험동물에 대한 윤리 논쟁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네이처 제공
식량 생산을 목적으로 사육되는 돼지의 경우 동물실험이 금지돼 있으나 최근 돼지의 뇌 복원 연구가 성공함에 따라 가축용 돼지를 이용한 다양한 동물실험이 시도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축까지 실험 대상에 오르며 실험동물에 대한 윤리 논쟁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네이처 제공
“창조주여, 제가 부탁했습니까? 진흙에서 저를 빚어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제가 애원했습니까? 어둠에서 절 끌어내 달라고?”

200여년 전인 1818년 영국 작가 메리 셸리(1797~1851)가 쓴 괴기소설 ‘프랑켄슈타인-근대의 프로메테우스’ 서문에 실린 ‘실낙원’의 한 구절이다. 무생물에 생명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낸 스위스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시체를 이용해 8피트(약 244㎝)의 인조인간을 만들어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괴물은 인간 이상의 힘을 발휘하고 자신과 똑같은 형태의 신부까지 요구했다. 그렇지만 새로운 인종이 나와 인간을 멸망시킬까 두려웠던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괴물의 요구를 거부했다가 살해당한다.

셸리는 소설을 쓰면서 영국 화학자 험프리 데이비의 전기분해 기술, 찰스 다윈의 할아버지 에라스무스 다윈이 수행한 자연발생 실험 같은 당대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을 활용했지만 사람과 똑같은 형태와 기능을 갖춘 인조인간을 만든다는 생각은 공상에 불과했다. 그런데 최근 생물학과 생체공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프랑켄슈타인’ 몬스터 기술이 현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 예일대 의대, 코네티컷 재향군인의료시스템 재활연구센터, 보스턴대 의대, 피츠버그대 신경학과, 이탈리아 파비아대 생물학·생명공학과 공동연구팀은 죽은 지 몇 시간이 지난 돼지의 뇌를 다시 살려내는 실험 일부를 성공하고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 18일자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죽은 생명체의 뇌 기능 일부를 다시 회복시켰다는 점에서 전 세계 과학계와 윤리학계에 충격을 안겨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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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 생산을 목적으로 사육되는 돼지의 경우 동물실험이 금지돼 있으나 최근 돼지의 뇌 복원 연구가 성공함에 따라 가축용 돼지를 이용한 다양한 동물실험이 시도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축까지 실험 대상에 오르며 실험동물에 대한 윤리 논쟁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뇌의 해마CA3 부위를 형광 처리해 죽은 뒤 방치된 경우(왼쪽)와 브레인엑스 기술로 처치(오른쪽)된 것을 비교한 사진. 브레인엑스 기술로 처리되지 않을 경우 사후 10시간이 지나면 세포핵(밝은 부분)을 제외하고는 뉴런과 성상교세포는 빠르게 분해돼 거의 사라지게 된다.  네이처·美예일대 의대 제공
식량 생산을 목적으로 사육되는 돼지의 경우 동물실험이 금지돼 있으나 최근 돼지의 뇌 복원 연구가 성공함에 따라 가축용 돼지를 이용한 다양한 동물실험이 시도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축까지 실험 대상에 오르며 실험동물에 대한 윤리 논쟁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뇌의 해마CA3 부위를 형광 처리해 죽은 뒤 방치된 경우(왼쪽)와 브레인엑스 기술로 처치(오른쪽)된 것을 비교한 사진. 브레인엑스 기술로 처리되지 않을 경우 사후 10시간이 지나면 세포핵(밝은 부분)을 제외하고는 뉴런과 성상교세포는 빠르게 분해돼 거의 사라지게 된다.
네이처·美예일대 의대 제공
연구팀은 보통 동물실험을 할 때 사용하는 실험용 무균돼지가 아닌 식재료 가공시설에서 얻은 생후 6~8개월 된 집돼지의 뇌 32개를 가지고 실험했다. 실험에 사용된 돼지의 뇌는 죽은 뒤 4시간이 지난 것들이었다. 보통 포유류의 뇌는 산소 공급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만 혈류가 중단되더라도 산소와 에너지 공급이 끊겨 회복 불가능한 뇌 손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분리된 돼지의 뇌를 자체 개발한 ‘브레인 엑스’라는 장치에 넣은 다음 보호제와 안정제 등을 섞은 특수 용액을 혈액 대신 뇌 혈관에 주입해 영양과 산소를 공급하며 뇌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뇌세포 구조, 뇌혈관 구조가 정상적으로 회복되고 신경과 세포를 파괴하는 염증 반응이 줄어드는 한편 시냅스에서 자발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관찰됐다. 그렇지만 인식과 지각 같은 고차원적 뇌 기능을 위해 필요한 전기적 활동은 관찰되지 않았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2013년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가 3조 5000억원을 투자해 진행 중인 뇌연구 프로젝트인 ‘브레인 이니셔티브’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연구를 주도한 네나드 세스탄 예일대 의대(신경과학) 교수는 “이번 연구는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혈관의 촘촘한 연결 네트워크를 통해 뇌에 보호제를 공급하면 심각한 외상후 생존율을 높이고 신경학적 결손을 줄여 뇌사의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 결과에 대해 생명윤리학자인 현인수 미국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 의대 교수는 “죽은 돼지의 뇌를 사실상 살려낸 이번 연구는 포유류의 뇌에 혈액 공급이 중단되면 몇 분 안에 사망한다는 기존의 생각을 뒤집는 것”이라며 “몸과 분리됐지만 살아 있는 뇌를 인격체로 보아야 하는지, 이런 연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 등 논란거리들을 남겼다”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2019-04-1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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