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고독한 백기사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고독한 백기사

입력 2019-04-16 17:42
업데이트 2019-04-17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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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봄, 대전
2015년 봄, 대전
바로크 시대는 16세기에 시작해 18세기까지 계속된다. 절정기는 1650년쯤이다. 바로크는 르네상스처럼 인간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인간을 있는 그대로, 원죄로 인해 일그러진(‘바로크’한) 존재로 그린다. ‘바로크’는 포르투갈어의 바호쿠(barrocoㆍ비뚤어진 모양의 진주)에서 왔다. ‘거칠고 조야하다’는 뜻이다.

바로크의 특징은 사상과 감정의 영역 안에서 작용하는 두 자극(磁極)으로 표현할 수 있다. 대립과 극단 속에서 회의하고 고뇌하는 모습이다. 무가치한 존재라는 자기 비하와 새롭게 얻은 막강한 힘에 대한 자부심, 두 극단을 오르내린다. 조울증과 흡사하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왔는가? 유럽인들이 근대 초기에 겪었던 낯선 경험 때문이다.

바로크 양식을 등장시킨 폭발력은 부분적으로는 ‘우주적’이었고, 부분적으로는 ‘사회적’이었다. ‘우주적’인 폭발력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제공했다. 지구 중심적인 천동설의 우주관에서 누리던 편안함은 사라지고, 광대무변한 우주 속의 먼지처럼 보잘것없는 고독한 인간이라는 개념이 자리잡았다. 그와 더불어 새로운 과학을 통해 얻어진 막강한 힘에 대한 의식이 고개를 쳐들었다. 인간은 자연법칙을 인식함으로써 자연에 대한 지배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이처럼 바로크는 무기력과 막강함의 양극적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그 폭발력은 또한 ‘사회적’인 것이었다. 화약과 대포의 등장으로 봉건 영주들은 더이상 돌로 쌓은 성벽 안에서 독립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지역적 권력과 자부심을 든든히 지켜 주던 보루가 힘없이 무너진 후, 새로이 등장한 막강한 중앙집권적인 왕권 앞에서 철저한 무력감이 귀족들을 사로잡았다. 고독과 소외와 절망이라는 새로운 느낌이 엄습했다. 귀족계급의 몰락과 더불어 강력한 왕권을 배경으로 국민적 군주국가가 성립했다.

바로크 양식은 그러한 심각한 양극성을 바탕으로 등장했다. 국왕의 막강한 권력과 몰락한 귀족의 무기력, 이 두 경험이 바로크 시대 유럽인들이 주변 세계에 대해 보인 새로운 반응의 핵심이었다.

담장 위에 엎드린 백구는 몰락한 백기사다. 뭇 행인의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성벽 안에서 누리던 독립성을 잃고 소외와 절망에 빠진 채 ‘바로크적 고독’에 신음하는 봉건귀족이다.
2019-04-17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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