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좀도둑 가족/이종락 논설위원

입력 : ㅣ 수정 : 2018-08-13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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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만비키’(万引き)는 좀도둑이라는 뜻이다. 가게에 들어가 물건을 고르는 척하다가 감시가 소홀한 틈(間)을 타 가방이나 옷에 넣어 들고 나오는 절도행위를 일컫는다. 틈이라는 뜻의 마(間)가 발음이 비슷한 만(万)으로 차용해 쓰면서 만비키라는 단어가 됐다는 게 정설. 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일본 영화 ‘만비키 가족’을 우리나라에 들여올 때 만비키란 말이 너무 생소할까 봐 배급사가 ‘어느 가족’이라는 막연한 제목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이 영화는 혈연으로 연결되지 않은 사람들이 한 집에 모여 할머니의 연금과 좀도둑질로 생활하면서도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내용이다. 국내에서도 스크린 수 100개 미만의 예술 영화로는 드물게 개봉 12일 만에 10만 관객을 동원할 정도로 화제다.

영화관을 찾았더니 50~70대 관객들이 눈에 띈다. 경찰에 잡힌 여주인공이 할머니와 같이 살게 된 동기를 질문받자 “(할머니가 가족으로부터) 버려진 걸 주워 왔다”는 대목에선 눈물을 훔치는 관객들이 제법 보였다. 고령사회 진행 속도가 일본만큼 빠른 우리다. 만비키 가족같이 혈연 가족을 대신할 ‘비혈연 공동체’가 곧 등장할 것 같은 예감에 이 영화가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jrlee@seoul.co.kr
2018-08-14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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