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만진의 도시탐구] 펄펄 끓는 강남스타일

입력 : ㅣ 수정 : 2018-07-3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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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특유의 말춤과 가사로 국내외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미국의 빌보드 차트에 연속 7주 동안 2위에 올랐으며, 유튜브 사상 가장 많이 본 동영상으로 기록되는 등의 대기록을 세웠다.
최만진 경상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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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만진 경상대 건축학과 교수

개발이 언급되기 시작한 1960년대의 강남은 그야말로 허허벌판의 척박한 땅이었다. 이곳이 본격적으로 변한 것은 1970년대 초반부터였다. 서울은 일자리를 찾아 농촌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 때문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불과 수년 안에 약 1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늘어날 정도였다. 거기에다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면서 수도권에서의 서울 도심 진입이 용이해져 도시는 그야말로 콩나물시루가 되었다. 강남개발은 이러한 초과밀화 현상을 해소하는 방편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꺼렸던 강남 이주는 도로, 교량, 터널을 개설하고 각종 공공 기관을 이전하면서 차츰 활기를 띠었다. 가장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경기고 등 명문고의 이전이었다.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강남으로 따라나섰고 강남 8학군의 신화를 창조했다. 또 다른 신화는 강남불패로 일컫게 되는 부동산 붐이다. 강남의 새 아파트 값은 분양되기도 전부터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돈과 힘이 있었던 많은 사람은 투자로 큰 부자가 되었다. 또한 대규모의 상업 및 업무단지가 생겨 강남은 순식간에 고층건물이 즐비한 초현대적 도시로 변모했다.

하지만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1980년대에 역사적 기반이 약했던 이곳은 정신적 지주를 만들지 못하고 유흥과 환락의 중심지가 되었다. 싸이가 낮에는 정숙하고 인간적인 남녀가 밤에는 야성을 여과 없이 드러낸다고 노래하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 ‘강남불패’ 신화로 집을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만 여기는 풍조를 낳았고, 빈부격차를 가중시켜 사회적 갈등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유흥과 투기는 우리 사회 전체를 강타했고, 심지어 정치권력과 이를 배후에 둔 큰손들도 가담하여 국민에게 상실감과 상처를 주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점은 돈을 우선시하다 보니 당연히 지켜야 할 개발의 원칙을 져버린 것이다. 새로운 복합지역인 것을 감안하여 충분한 녹지와 바람길을 조성하는 등의 최소한의 정주환경은 고려했어야 했다. 하지만 양심을 다 버리고 강남 전체를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더미로 만들어 놓다시피 했다. 이러다 보니 태양의 복사열이 도시를 달구는 ‘열섬현상’이 강남을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강남스타일은 밤이 되면 뜨거워지고 심장이 터지는 여자와 남자를 노래한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산업화와 경제 부흥을 핑계로 향토와 자연을 저버렸다. 오늘날 발생하는 지구 온난화 현상과 환경 파괴는 이러한 무분별하고 탐욕스러운 개발에 그 원인을 찾을 수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이번 여름 살인적인 폭염으로 펄펄 끓는 강남의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위에서 말춤을 추면서 그 벌을 받는지도 모른다. 황량한 원래의 강남 들판이 더 좋았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친 억측일까?
2018-08-01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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