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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칼럼]노회찬 의원이 말했던 “진보가 희망인 이유”

[기자칼럼]노회찬 의원이 말했던 “진보가 희망인 이유”

강국진 기자
강국진 기자
입력 2018-07-28 10:00
업데이트 2018-07-2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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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고(故)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국회 영결식이 열렸습니다. 평생을 한국의 민주화와 진보정치에 바쳤던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노 의원을 기억하며 그가 2009년 당시 ‘서울신문’ 기자들의 공부모임이었던 ‘연대와 희망’ 초청강사로서 세 시간 가까이 진솔한 얘기를 들려줬던 얘기를 다시 꺼내놓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
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
노 의원이 초청강연을 했던 2009년 1월 16일 당시 그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17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뒤 진보신당 공동대표로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2008년 1월부터 서울 노원(병)에서 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준비할 당시 겪었던 얘기로 자신의 17대 의정활동에 대한 반성을 시작했습니다.

선거를 준비하면서 노 의원은 유권자들한테 받을 예상 질문을 뽑아서 맞춤형 답변을 열심히 연습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그건 헛수고였습니다. 선거까지 석 달 동안 아무도 그가 준비했던 예상질문이었던 “너무 과격한 거 아니냐” “너무 한쪽으로 편향된 거 아니냐” “중간에서 폭넓게 해야 하지 않느냐” “왜 밤낮 데모만 하느냐”를 묻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만 많이 받았답니다.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서민들 먹고 살게 해달라”였고, 그 다음이 “서민을 위해 앞으로도 열심히 일해달라”는 것이었답니다. 노 의원에게 특히나 충격적이었던 건 자신이 몸담았던 민주노동당이 유권자들에게 서민의 대변자로 비치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노 의원은 17대 국회 당시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넓은 현대차 공장에서 옷차림만 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섞여서 같은 일을 하는데 복장이 다른 겁니다. 노 의원은 “정규직들은 우리를 보면 장갑을 벗고 반갑게 악수를 하며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눈다”면서 “비정규직은 장갑 안벗는다. 다가가서 손을 내밀어도 외면하기도 한다”고 털어놨습니다.

노 의원으로선 서운할 법도 한 그런 상황은 왜 벌어졌던 것일까요. 노 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일은 똑같은데 월급은 절반 밖에 안된다. 정규직노조가 파업이라도 하면 비정규직은 일감이 없어서 굶어야 한다. 정규직노조는 2층짜리 단독건물을 노조사무실로 쓴다. 상근자도 엄청 많다. 비정규직노조 사무실은 공장 한켠에 한 평 정도 된다. 노조 설립하고 나서 1년까지는 유선전화도 회사에서 안 놓아줬다고 한다.”

결국 비정규직 입장에선 정규직노조는 남의 편입니다. 민주노총은 정규직노조 집합체입니다. 민주노총이 지지하는 민노당은 당연히 자기들 편이 아닌 겁니다. 노 의원은 그런 인식이 굳어지도록 방치한 책임을 크게 느꼈습니다. 노 의원은 “민노당이 정말로 당시에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고 인식됐다면 지난 대선 지지율이 20%는 거뜬했을 것”이라면서 “돌이켜보면 진보라는 사람들이 오히려 준비 부족, 정치력 부족, 전략 부족… 그런 걸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2000년 1월 창당한 민노당 초기 주역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민노당은 놀라운 성장세를 이어갔습니다. 노 의원은 “민노당이 창당 당시 당원 7000명에서 1년만에 두배, 2년차에 3만, 3년차에 5만, 4년차에 7만, 나중에 10만 됐다”면서 “지지율도 처음엔 1~2%였는데 17대 총선에서 정당투표로 13.4%까지 기록했고 그해 말 지지율이 18~19%까지 나왔다”고 회상했습니다.

노 의원은 “13%라는 건 국민들 사이에서 진보를 수용할 수 있는 토대가 꽤 있다는 걸 보여준다”면서 “문제는 그걸 더 끌어내는 것과, 고정지지로 만드는 거였는데 민노당 의정 4년에 결과적으로 제대로 못하니까 국민들이 지지를 철회한 것이지 국민이 보수화된 게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런 점에서 노 의원은 17대 국회 4년 동안 가장 아쉬운 대목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첫번째는 민노당 17대 총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무상교육 무상의료 부유세” 공약을 제대로 끌고가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는 “국민들은 그 공약의 실현가능성을 본 게 아니라 그런 얘기가 계속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라면서 “문제는 무상교육 무상의료 부유세를 민노당의 브랜드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2004년 원내 진출 이후 1년 내내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이 벌인 국가보안법 판에 휩쓸렸다”면서 “2005년 가을에야 무상교육 무상의료 부유세 관철 위한 본부를 만들었다. 노력도 별로 안하고 타이밍도 놓쳐버렸다”고 아쉬워했습니다.

2004년 당시 한창 시끄러웠던 국가보안법 논쟁도 아쉬운 대목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고수하자는 쪽은 한나라당 내에서도 적었다고 합니다. 국가보안법 7조(이적단체, 이적표현물, 이적행위)만 없애자는 게 한나라당 개혁파와 민주당 주류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강경파와 민노당에선 완전폐지를 주장했다. 노 의원은 “국가보안법 사범 보면 95%는 7조가 문제다. 나머지는 간첩처럼 국보법 없더라도 잡혀갈 사람들이었다”면서 “당시엔 나도 국보법 완전폐지 주장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반성할 부분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선언한 것을 계기로 탄생한 특검도 많이 아쉬운 대목이라고 했습니다. 특검 주장을 관철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노 의원이었지만 “지금 와 생각하면 경륜부족”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상황에선 구석에 몰린 검찰이 대검중수부장 지휘받는 특별수사본부에 삼성 수사 열심히 해 좌천된 사람들로 구성했다. 이들이 당시에 제일 수사 잘할 사람들이었다. 성과도 있었다. 그런데 특검 때문에 중단됐다.”

노 의원은 “특검이 검찰보다 잘한다는 보장도 없고, 특검은 누가 되느냐에 따라 판도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노무현(대통령)이 검찰보다도 의지가 적었다”면서 “민변이 추천한 변호사가 했으면 100중에 60은 했겠지만 노무현은 삼성맨을 특검으로 임명했다. 나는 그것까지 내다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노 의원은 당시를 떠올리며 “운동권 관성과 흑백논리”를 반성한다고 했습니다.

노 의원은 17대 의원 시절을 반성하면서 미래에 대한 목표와 전망도 밝혔습니다. 지금 들어도 시사점이 많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진보는 지금 분명히 위기다. 지금 진보진영에게 필요한 건 실용노선, 즉 실사구시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되돌아봐도 성공한 혁명은 모두 실용노선으로 성공했다. ‘실사구시’를 진보의 기본철학으로 삼아야 한다.”

18대 총선 당시 선거참모들이 노회찬에게 “자유총연맹 회의가 있으니 거기 가서 인사를 하라고 권했답니다. “그 말을 듣고 몸이 굳어졌다”는 노 의원은 참모들 강권에 별 수 없이 자유총연맹 회의에 갔답니다. 그가 거기서 본 건 무엇이었을까요. “내 선거구 인구가 20만명이고 9개 동이다. 자유총연맹이 동마다 조직이 있다. 내가 찾아간 자리는 어느 동의 운영위원회 뒷풀이였는데 거기 참석한 사람만 줄잡아 30명이었다. 본격적인 이념투쟁 벌어질거라 생각하고 각오 단단히 했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노 의원은 “자영업 위해 먹고살기 위해 가입한 사람도 있고, 동네에서 사람들 많이 만나야 하는 필요 있는 사람들도 있고, 놀랍게도 여성이 절반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유총연맹 수뇌부는 극우조직이지만 하부는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다. 처음엔 인사만 하고 나오려 했는데 주저앉아서 결국 소주를 너댓병 먹었다”면서 “만나보니 자유총연맹 회원이라는 사람들이 서민 범주에 드는 사람들이었다. 나중에는 9개 동네 운영위원회마다 가봤다”고 회상했습니다.

결국 내친김에 재향군인회도 찾아갔답니다. 재향군인회 사무실 한쪽은 6.25참전무공자회가 쓰고 있었답니다. 연배가 최소 60세는 되는 이 단체 소속 할아버지들이 재향군인회보다 훨씬 반갑게 맞아줬습니다. “외롭고 소외돼 있는데 알려진 사람이 찾아오니 반가운 거다. 나중엔 노원구 총회가 있는데 와달라고 귀띔까지 하더라. 70대 할아버지 500명이 모이는 자리였다. 후보들 중 유일하게 초청받아서 인사를 했다.”

그는 “결국 다른 게 아니다. 불의에 맞서 싸우는 거와 약자 편에 서는 활동에 호감 보인것”이라면서 “대중들을 만나보니 ‘친북만 아니면 사회주의도 좋다’는 정서가 강했다. 한국에선 노무현 정부조차도 친북으로 몰아세우는 분위기가 있지만, 가만히 보니 북한만 편드는 거 아니면 이데올로기에 구애받지 않는다. 레드컴플렉스가 막상 보니 웃기는 거였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노 의원이 말하는 “진보가 희망이 있다는 근거”였습니다.

그런 고민 위에서 노 의원이 가장 먼저 거론한 것은 남북문제였습니다. 노 의원은 “박근혜가 북한에 가면 조선노동당 관계자들이 만나준다. 정동영 전 통일장관이 북한 가도 조선노동당 관계자를 만났다. 하지만 민노당이 북한에 가면 노동당이 아니라 사회민주당이 만나준다”고 했습니다. 쿠바나 중국같은 혈맹은 조선노동당이 만나고 사회민주당은 서방세계 대표단 만나는 당이랍니다. 노 의원은 “북한은 오히려 보수든 진보든 상관없이 ‘힘’을 본다. 우리만 짝사랑한다고 되는게 아니다”면서 “오히려 진보정당이 북한 비판하면 그게 오히려 북한에게 따끔하다. 그걸 감안해서 북한에 대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습니다.

당시 노 의원은 선거제도 개혁을 역설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제는 바로 현재 정의당이 가장 주력하는 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선거제도 개혁이 개헌보다 더 중요하다”는 노 의원의 외침은 이제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이 됐습니다. “국민들이 5% 지지하면 5%만큼 의석을 가져야 한다. 1등 말고는 다 떨어지는 구조에선 최소 50% 국민의 선택이 무의미해진다. 유럽정치도 초기엔 완전비례대표제도를 위해 한세대 가까이 걸린 투쟁이 있었다. 그걸 거쳐서 좌파정당이 집권도 하고 그런 거다.”

세종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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