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처음의 맛/임경섭

입력 : ㅣ 수정 : 2018-07-12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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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영/I Am Sorry(172×129㎝, 캔버스에 혼합 미디어) 1996~1998년 예일대 대학원 회화전공 석사. 단국대 미술학부 교수

▲ 정치영/I Am Sorry(172×129㎝, 캔버스에 혼합 미디어)
1996~1998년 예일대 대학원 회화전공 석사. 단국대 미술학부 교수

처음의 맛/임경섭

해가 지는 곳에서
해가 지고 있었다

나무가 움직이는 곳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엄마가 담근 김치의 맛이 기억나지 않는 것에 대해
형이 슬퍼한 밤이었다

김치는 써는 소리마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고
형이 말했지만
나는 도무지 그것들을 구별할 수 없는 밤이었다


창문이 있는 곳에서
어둠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달이 떠 있어야 할 곳엔
이미 구름이 한창이었다

모두가 돌아오는 곳에서
모두가 돌아오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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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의 맛’이란 이것과 저것, 혹은 ‘너’와 ‘나’의 다름을 깨달을 때 선명해지는 법이다. 김치의 맛은 누가 담갔느냐에 따라서 다를뿐더러 그 써는 소리마저 다르다. 그런 분별이 생길 때 우리는 이별과 슬픔을 겪으며 나이를 먹는다. 형은 엄마가 담근 김치 맛이 기억나지 않아서 슬퍼하는데, 그것은 엄마와의 긴 이별을 암시한다. 그렇다면 이 시는 분별과 나이 먹는 것의 슬픔에 눈떠 가는 성장 이야기를 전하는가? 그것만은 아니다.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걸린다. 왜 모두가 돌아오는 곳에서 모두가 돌아오지 않았을까. 여객선을 타고 바다로 나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은 안산의 아이들이 기어코 떠오르는 것이다.

장석주 시인
2018-07-1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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