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량 안 줄이고 칼퇴 압박…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업무폭탄’

업무량 안 줄이고 칼퇴 압박…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업무폭탄’

김지예 기자
김지예 기자
입력 2018-07-03 22:48
업데이트 2018-07-04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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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주 52시간 근무

오늘 할 일 못 마치고 내일로 미뤄
업무의욕 저하…성과 하향평준화

업종 특성 고려 없이 시간만 줄여
“수술중 ‘칼퇴’ 의사 생기나” 농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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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근무제’가 본격화된 가운데 일부 기업에서는 ‘강제 퇴근’ 뒤 집에서 업무를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도 일어나고 있다. 지난 2일 오후 6시 12분쯤 직원들이 모두 퇴근해 텅 비어 있는 서울 시내 한 사무실의 모습.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주 52시간 근무제’가 본격화된 가운데 일부 기업에서는 ‘강제 퇴근’ 뒤 집에서 업무를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도 일어나고 있다. 지난 2일 오후 6시 12분쯤 직원들이 모두 퇴근해 텅 비어 있는 서울 시내 한 사무실의 모습.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저녁이 있는 삶’이 현실화된다는 기대감 속에 지난 1일 시행된 ‘주 52시간 근무제’가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장밋빛’ 제도만은 아니라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근무 시간이 줄면서 퇴근 후 시간이 한층 여유로워진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찮다는 지적이다. 제도가 안착하기까지 숱한 시행 착오와 진통이 예상된다.

먼저 지나치게 ‘칼퇴근’을 강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업무 혼선이 속출하고 있다. 근무 시간은 줄었지만 업무량에는 변함이 없다는 게 함정이다. 3일 오후 6시가 되자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서는 “어서 퇴근하라”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직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퇴근을 해야만 했다. 이 회사 직원 김모(39)씨는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속담도 있는데 주 52시간제가 도입되니 오늘 할 일도 6시만 되면 내일로 미뤄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다음날 ‘업무폭탄’이 떨어지게 되고, 업무는 날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모(35)씨는 “정해진 날까지 반드시 마쳐야 하는 프로젝트가 있어서 결국 일을 집으로 가져와 할 수밖에 없었고 앞으로도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지 않을까 싶다”고 토로했다.

또 일에 대한 열의가 남다른 직장인에게는 ‘주 52시간제’가 입신양명의 길을 막는 걸림돌로 인식된다. 업무에서 월등한 성과를 내기 위해 개별적으로 노력을 기울일 시간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대기업 계열사 직원인 김모(37)씨는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서 임원까지 승진하고 싶은데, 정시 퇴근을 압박하니 참 난감하다”면서 “팀원들의 업무 성과가 하향 평준화될 것 같고 업무에 대한 애착도 크게 약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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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됐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 첫 시행일인 지난 2일 밤 9시쯤 서울 광화문 한 빌딩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대부분 일찍 퇴근하지 못하고 야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l.co.kr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됐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혼선이 이어지고 있다. 첫 시행일인 지난 2일 밤 9시쯤 서울 광화문 한 빌딩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대부분 일찍 퇴근하지 못하고 야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해국 선임기자 seaworld@seoul.co.kr
직장 동료와의 관계가 단절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퇴근 후 회식이 초과 근로시간에 포함되진 않지만 회식을 사실상 ‘업무의 연장선’이라고 인식하는 직장인이 많기 때문에 동료나 업무상 만남은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에서다. 유모(28)씨는 “저녁이 있는 삶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추구라는 제도의 취지에 부합하려면 직장 동료와의 저녁 약속은 모두 끊어야 한다”면서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사람들과 스킨십이 줄어들어 사회가 점점 더 각박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업종의 특성을 깊이 고려하지 않고 ‘주 52시간’만 줄곧 강조하다 보니 업종별로 서비스의 질이 저하될 것이란 지적도 있다. 특히 의사와 간호사 등 응급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직군들도 ‘주 52시간’ 틀에서 근무 시간을 조정해야 하다 보니 간호사 1인당 돌봐야 하는 환자 수는 기존보다 훨씬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의사가 수술하는 도중 퇴근 시간이 되면, 수술을 중단하고 퇴근해야 하느냐” 등 자조 섞인 농담도 끊이지 않고 있다. “퇴근 후 회사에서 걸려 오는 전화를 받으면 근로기준법 위반인가”, “퇴근길에 업무 생각을 하면 근무에 해당하나” 등 유권해석이 필요한 각종 궁금증이 쏟아지는 것도 주 52시간제가 낳은 웃지 못할 풍경들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업무 형태별로 근무 상황이 다 다르기 때문에 과도하게 ‘주 52시간’으로 못박고 시행하면 현실적인 여건과 맞지 않게 된다”면서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 업종에 따라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적용해 평균 근로시간을 줄여 나가는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2018-07-04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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