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 에세이] 어느 여성 공무원의 정치 도전기/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입력 : ㅣ 수정 : 2018-05-08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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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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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최근 지인이 지방선거에 도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정년퇴직한 여성공무원이다. 현직에 있을 때도 열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쳤던 그는 퇴직 후 고향을 위해 살리라 마음먹고 정치에 도전했다. “고향을 누구나 살고 싶은 아름답고 풍요로운 지역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에게 저런 용기가 있었구나 하는 감탄은 잠깐이었다. 평소 여성의 정치참여가 사회발전을 위해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도전을 해야 결실도 있다고 믿었지만, 정치판의 현실을 어느 정도 들어 보았기에 걱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당연히 내 첫 질문은 공천 가능성이었다. 그는 고개를 흔든다. “어찌 될지 몰라요. 하지만 끝까지 해 봐야지요.”

정치 신인인 그에게 첫 관문은 정당의 공천이다. 지난 선거를 통해서도 입증된 경험론적 사실이다. 그러나 그 지역은 경선지역이 됐고 그는 경선에서 실패했다.

소회를 물었더니 여성들에게 정치에 참여하라고 권하고 싶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여자가 무슨 지자체장을 하냐고 의문을 던지는 유권자들 시선도 읽을 수 있었고 보이지 않는 남성들만의 리그에 낄 수 없는 한계도 느꼈다. 대의명분만 가지고 정치판에 뛰어드는 것이 무의미하지는 않겠지만 실현가능성은 없다. 더이상 계속할 여력이 없다는 말에는 표현하기 어려운 현실 정치의 어려움이 담겨 있다. 아마 지금쯤 그의 집에는 경선에서 쓴 비용 청구서만 잔뜩 날아오고 있을 것이다. 청구서를 받을 때마다 내가 왜 시작을 했지 하는 후회와 자괴감만 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구서 뒷면에는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경험이라는 자산이 숨어 있을 것이다.


최근 주변에서 정치에 입문하려다가 선거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경선에서 떨어진 여성들을 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하향식 공천을 위한 경선은 민주주의 기본으로 보이지만 내면을 보면 정치 신인에게는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한다. 신인에게 주는 10% 가산점도 별 효과가 없다고 하니 해결방법은 더 복잡해진다.

정치권에서는 여성 몫을 늘려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여성계 요구는 선거철마다 나오는 상습 반복적 일로 치부하고, 한두 명의 대표 여성을 얼굴마담 격으로 발굴하는 것으로 할 일은 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많다. “여성들이 비례대표에만 관심을 갖지 말고, 적극적으로 선거에 나갔으면 좋겠어요.”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이야기이다.

외국은 여성의 정치참여를 어떻게 확대했을까? 이미 북유럽이나 독일, 프랑스는 선거제도와 정치관계법에 여성 공천을 보장하고 있다. 프랑스는 2010년 각급 선거의 후보에 여성을 50% 공천토록 하는 남녀동수공천법을 통과시켰다. 스웨덴은 정당에서 전략적으로 여성의 정치참여를 우대하고 있다.

우리도 법과 제도는 그럴듯하게 돼 있다. 공직선거법 제47조에 ‘후보자를 추천하는 때에는 각각 전국 지역구 총수의 100분의30 이상을 여성으로 추천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라고 돼 있지만 지키는 정당은 사실 없다. 임의규정이라 구속력도 없다. 그나마 긍정적인 것은 2002년 도입된 할당제에 의해 의회 의원들은 숫자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최근 여성계에서는 정치적 결정에 사회구성원 모두가 고르게 참여하고 의견을 개진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할당이 아니라 남녀동수권을 주장하며 이를 헌법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제 지방선거가 한 달 남짓 남았다. 각 당의 공천도 마무리되었다. 험난한 현실정치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여성 후보자들이 늘고 있지만, 도전의 길을 택한 여성들의 용기와 열정이 하나의 씨앗이 되어 앞으로 더 많은 여성 후배들이 문지방을 넘을 수 있는 불쏘시개 역할을 하리라 기대해 본다. 지난 지방선거의 경우, 광역자치단체장은 하나도 없지만 기초자치단체장에 9명의 여성이 당선되었다. 올해 선거에도 모두들 깨끗하고 공정하게 경쟁해 당당하게 승리하는 선거가 되기를 응원하고 싶다.
2018-05-09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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