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전역서 ‘목숨을 위한 행진’
“나에게도 총기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꿈이 있다.”24일(현지시간)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에서 열린 총기 규제 강화 촉구 시위 ‘우리의 목숨을 위한 행진’ 도중 연단에 오른 더글러스 고교 총격사건 생존자 엠마 곤잘레스가 희생자 17명의 이름을 차례차례 부르며 오열하고 있다.
워싱턴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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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전역 뒤덮은 “총기 없는 세상”… 역대 최대 규모 집회
24일(현지시간) 열린 총기 규제 강화 촉구 시위 ‘우리의 목숨을 위한 행진’ 참석자들이 미국 워싱턴DC 연방 의회 의사당 일대를 빼곡히 메우고 있다. 플로리다 더글러스 고교 총격사건 생존자들은 “나에게도 총기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꿈이 있다”고 호소했다. 이날 워싱턴DC 50만명을 비롯해 뉴욕, 펜실베이니아, 플로리다 등 미국 도시 800여곳에서 동시에 열린 이번 시위에 초·중·고교 학생, 교사와 학부모, 연예인 등 모두 80여만명(주최 측 추산)이 참여했다고 미 NBC는 전했다. 워싱턴DC에서 열린 단일 집회로는 그 규모가 1969년 베트남전 반대 집회 수준인 역대 최대급으로 현지 언론들은 추산하고 있다. 워싱턴 AFP 연합뉴스
집회 참가자들이 ‘쏘지 마세요’ 등 총기 규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적은 손바닥을 펼쳐 보이고 있다.
워싱턴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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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총기 규제 강화의 목소리를 높였다. ‘총기가 아니라 아이들을 보호하라’, ‘이대로 둘 순 없다’, ‘함께 세상을 바꾸자’ 등의 메시지가 적힌 손피켓을 든 시민들은 희생자를 추모하며 눈물을 흘렸다. 또 이들은 “정치인들에게서 전미총기협회(NRA) 돈을 빼앗아라”며 총기 규제 강화 구호를 연이어 외쳤다.
참가자들이 ‘총이 아니라 아이들을 보호하라’ 등의 문구를 적은 팻말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주최 측은 이날 집회에 워싱턴에만 50만명, 전국 80만명이 모인 것으로 추산했다.
워싱턴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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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리 사이러스와 아리아나 그란데 등 집회를 지지하는 유명 연예인들의 공연도 이어졌다. 뉴욕에서는 비틀스 멤버인 폴 매카트니가 1980년 자신의 동료였던 존 레넌이 총에 맞아 피살된 사건을 언급하며 발언대에 올랐다. 매카트니는 AFP통신에 “우리는 매주 새로운 총격 사건 뉴스를 접하지만, 어떤 것도 바뀌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오늘 이후로 무언가 바뀔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총기 참사가 일어난 플로리다의 더글러스 고교 인근에도 2만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더이상은 안 된다’ 등 구호를 외치며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조지 클루니와 인권 변호사인 부인 아말 클루니, 스티븐 스필버그 등 할리우드 배우와 감독, 유명 방송인들은 거액의 기부금을 쾌척해 행사를 도왔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오늘 행진이 있게 한 젊은이들로 인해 큰 영감을 받았다”면서 “계속해라. 여러분은 우리를 전진시키고 있다. 변화를 요구하는 수백만명의 목소리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격려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 민주당 인사들도 잇따라 응원 글을 올렸으나, 공화당 인사들은 말을 아꼈다. 플로리다가 지역구인 마코 루비오(공화) 상원의원은 성명에서 “파크랜드 고교 학생들과 집회를 지지한다”면서도 “총기 금지는 수정헌법 2조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은 이날 성명에서 “표현의 자유(수정헌법 1조)를 실행하는 용감한 미국 청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신원 조회를 강화하는 등 총기 규제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2018-03-26 1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