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 증언·자료 조사 첫 보고서
“평화롭던 광주, 계엄군 집단 발포”신군부 “자위권 차원” 주장 거짓
시민군 교도소 습격설도 왜곡
전남도경 상황일지 조작 확인
전남지방경찰청은 11일 경찰관 증언과 자료를 중심으로 한 5·18 민주화운동 과정을 설명하면서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 30분 나주경찰서 남평지서에서 시민들의 첫 무기 실탄 피탈이 발생하기 30분 전인 낮 12시 59분쯤 이미 전남도청 앞에서는 시민들을 향한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자행됐다”고 밝혔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신군부 측이 “시민들이 남평지서를 습격, 총기 무장해 계엄군이 방어 차원에서 공격했다”는 주장을 공식 반박한 것이다. 그동안 군 당국은 보안사가 보존 중인 ‘전남도경 상황일지’를 근거로 21일 오전 8시 나주 반남지서, 오전 9시 남평지서에서 무기를 탈취했기 때문에 군이 자위권을 발동해 발포했다고 주장해 왔다. 이 상황일지 기록은 국회 5공 청문회 등에도 그대로 인용돼 왔으나 전남경찰청은 이 일지가 조작된 것으로 판단했다. 전남경찰청은 과거 내부 문건 작성 시 ‘전남경찰국’이라고 표기해 왔으나 이 문건은 ‘전남도경’이라고 돼 있고, 한자 역시 ‘경’(警) 대신 ‘경’(敬)으로 잘못 쓰여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당시 경찰이 보유하지도 않은 경찰 장갑차가 피탈됐다는 내용이 있고 문서 제목과 글꼴도 경찰이 사용하던 양식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시민군이 광주교도소를 여러 차례 습격했고 북한군 수백 명이 잠입, 시위를 주도하고 사라졌다는 설도 군이 의도적으로 조작했다고 했다.
전남경찰청은 이날 지난 4월부터 5개월간 ‘5·18 민주화운동 관련 경찰 사료 수집 및 활동조사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한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근무했던 경찰관 137명의 증언도 확보했다.
강성복 전남경찰청장은 “당시 경찰 치안일지에 따르면 당시 광주 치안은 안정적이었고 경찰 요청이 아닌 군 자체 판단에 따라 1980년 5월 18일 오후 4시부터 계엄군의 광주 진압작전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강 청장은 “5·18 성격과 역사적 의미에 대한 정치적, 법률적 판단과 평가는 어느 정도 정리됐으나 민주화 항쟁을 폭도들의 난동으로 매도한 주장이 계속돼 광주시민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고 있다”면서 “더 늦기 전에 경찰관들의 증언과 자료를 수집해 역사 왜곡을 바로잡고 진실 규명에 도움이 되도록 이번 조사를 시행했다”고 말했다. 그는 “비상정국이라 계엄군의 과오나 잘못을 기록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시위대와 시민의 부정적인 면은 과장, 부각되거나 왜곡돼 기록돼 있다”며 “관련 자료와 참여자들의 증언을 계속 확보해 미흡한 점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무안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2017-10-12 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