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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1년 앞두고, 임용 8개월 만에… 또 ‘人災’

정년 1년 앞두고, 임용 8개월 만에… 또 ‘人災’

조한종 기자
입력 2017-09-17 18:02
업데이트 2017-09-1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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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석란정 진화 중 베테랑·새내기 소방관 2명 순직

인근 호텔 공사하자 붕괴 조짐
주민들 건물 위험 민원 제기 많아
재발화 이후 잔불정리 중 참변
1계급 특진… 유공자 지정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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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시 강문동 석란정 화재로 동료를 잃은 한 소방대원이 17일 현장을 바라보며 슬픔에 잠겨 있다. 강릉 연합뉴스
강릉시 강문동 석란정 화재로 동료를 잃은 한 소방대원이 17일 현장을 바라보며 슬픔에 잠겨 있다.
강릉 연합뉴스
 17일 오전 4시 29분쯤 강원 강릉시 강문동 석란정에서 불을 끄던 소방관 2명이 정자가 붕괴되면서 건물에 깔려 숨졌다. 최근 건물 붕괴 위험을 지적하는 민원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인재(人災)라는 지적도 나온다.

 화재는 전날 밤 9시 45분쯤 발생해 소방관들에 의해 10여분 만에 꺼졌다가 이날 오전 3시 52분쯤 재발화해 4시쯤 진화됐다. 진화 이후 정자 건물 바닥에서 연기가 나자 한 팀을 이룬 경포119안전센터 소속 이영욱(59) 소방위와 이호현(27) 소방사가 건물 한가운데에 들어가 잔불 정리를 하다 변을 당했다. 두 소방관은 매몰 10여분 만에 동료들에 의해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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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영욱 소방위-故이호현 소방사
故 이영욱 소방위-故이호현 소방사
 이 소방위는 정년을 1년여 앞둔 베테랑 대원이었다. 91세 노모를 모시며 부인(56), 아들(36)과 함께 살고 있었다. 2014년 폭설대책 유공자로 강원도지사 표창을 받을 만큼 모범적이었던 그는 이날도 화재진압팀장으로서 솔선하다가 희생됐다. 아들 이인씨는 “아버지는 6남 2녀 중 일곱째로 효심이 깊었다”며 “내년에는 가족여행도 많이 다니자고 계획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가셔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울먹였다.

 이 소방사는 지난 1월 임용된 새내기 소방관이다. 미혼인 그는 부모, 여동생(26)과 함께 살았다. 경포119안전센터는 대학에서 소방환경방재학을 전공하고 해병대에서 복무했던 그의 첫 부임지였다. 아버지 이광수(55)씨는 “아들은 천생 소방관이다. 남을 구해야 하는 소방관 특성상 체력은 필수라며 하루도 빼먹지 않고 운동을 했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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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로 순직한 이영욱 소방위와 이호현 소방사의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강릉의료원을 찾은 동료 소방관들이 두 사람의 영정 사진 앞에서 경례하고 있다. 강릉 연합뉴스
화재로 순직한 이영욱 소방위와 이호현 소방사의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강릉의료원을 찾은 동료 소방관들이 두 사람의 영정 사진 앞에서 경례하고 있다.
강릉 연합뉴스
 김남기 강릉소방서 예방계장은 “이 소방위는 정년을 앞두고 현장에서 먼저 뛰어들어 진압에 나서는 솔선수범형 동료였고, 막내 이 소방사 역시 성격이 밝고 적극적인 대원이었다”며 안타까워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두 분의 희생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면서 “고인의 명복을 빌며 천붕(天崩·하늘이 무너짐)과 참척(慘慽·자손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먼저 죽는 일)의 아픔을 겪은 유가족에게 마음을 다해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고 떠난 분들을 기억하고 남은 이들의 몫을 다하겠다”며 “국민 모두의 안전을 위해 한시도 방심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영결식은 19일 오후 2시 강릉시청에서 강원도청장(葬)으로 열리며 국립대전현충원 소방관 묘역에 안장된다. 강원도 소방본부는 순직한 두 대원을 1계급 특진 추서하고 국가유공자 지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석란정은 1956년 지어진 목조 기와 건물로 높이 10m, 면적 40㎡다. 비지정 문화재로 등재돼 강릉시에서 관리해 왔다. 정자는 주변에서 최근 스카이베이 경포호텔 공사가 시작되며 금이 가기 시작해 인근 주민들이 대책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말에는 금이 더 깊어지면서 파이프로 보강하고 주변에는 펜스를, 지붕에는 천막을 설치하는 등의 응급조치가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인근에 폐쇄회로(CC)TV가 없는 탓에 화재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정자 내부에 전기 시설은 없고, 주변에 높이 3m의 침입 방지용 펜스가 설치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주민들은 “완전히 출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정자와 10여m 떨어진 호텔 공사 현장을 통해 출입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석란정은 정식 문화재가 아닌데 소방관들이 헌신적으로 진화 작업을 한 점도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강원도 소방본부 관계자는 “석란정이 보존 가치가 높을 것으로 판단해 적극적으로 화재 진압을 하다 변을 당한 것 같다”며 “호텔 공사로 금이 가는 등 정자가 기울어 보였다는 주민들의 증언이 있는 만큼 다각적으로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5년간 우리나라 소방공무원 순직자는 21명, 공상자는 1725명에 이른다.

 강릉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2017-09-18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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