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역사 왜곡, 개방된 역사관으로 대응해야/이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

입력 : ㅣ 수정 : 2017-08-28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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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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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

올해 광복절에도 일제의 만행과 피해의 서러운 역사가 되새겨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역사 문제를 매듭지을 때 한·일 간의 신뢰가 더 깊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뿐 아니라 중국의 역사 왜곡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우리 역사에 대한 왜곡을 하루빨리 바로잡아야겠지만, 피해 의식에 맺힌 민족주의 역사관으로는 어렵다.

일본이 19세기 말 유럽의 근대역사학을 선점하면서 한국과 중국의 역사를 왜곡해 침략을 합리화하는 데 이용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일본이 지금도 여전히 왜곡된 역사관을 고집해 역사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중국의 역사학자들은 1920년대부터 바로 그 일본 우월적 역사관을 모방한 중화민족사관으로 일본의 만주 역사 왜곡에 대항했다. 그것이 오늘날 중국 영토 내의 역사와 문화는 모두 중국의 것이라는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의 기초가 되고, 동북공정의 뿌리가 됐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역사는 일본에 의해 왜곡되고 중국에 의해 부정됐다. 한국에서 피해 의식에 기초한 민족주의 역사관이 뿌리내린 것은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일본과 중국은 최근 신민족주의적 행태로 역사 왜곡 논쟁을 악화시키고 있는데, 이는 동북아의 안보협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필자는 얼마 전 동북아역사재단을 방문한 폴란드 역사학자의 “폴란드는 피해자 역사 인식이 없다. 왜냐하면 폴란드인들뿐만 아니라 러시아인들도 차르나 스탈린 폭정시대의 똑같은 희생자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듣고 한·일 간 역사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우리가 일본에 역사 반성을 요구하는 것은 일본이 침략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일본에 대해 군대 위안부 문제나 군함도 탄광의 강제노동과 징용자에 대한 반성과 배상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일본인 위안부나 일본인 탄광 노동자에 대한 인권유린, 반세기가 지난 후에야 겨우 소액을 보상받은 시베리아 억류자나 국채를 상환받지 못한 일본인들의 비슷한 고통도 함께 배려하고 연구한다면 일본 국민도 피해자로서 같은 역사 인식을 공유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피해 의식에 갇힌 배타적인 민족주의 역사관으로는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 왜곡을 이기지 못한다. “역사는 같은 지역에서 공존해 온 여러 민족 공동의 유산”이라는 생각이 서구 역사학계의 주류다. 2000여년 전의 단군이 ‘우리만의 할아버지’는 아니라는 개방된 역사 인식이 오히려 우리 역사의 무대를 확대하는 길이 아닐까. 광개토대왕의 광대한 영토만이 오늘날 한민족의 위대성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영국, 프랑스, 독일의 조상은 모두 야만족이었지만 지금은 선진국이다. “낙랑이 평양에 있었다면 고조선의 영토가 작았다는 것이 된다”고 낙랑의 위치 문제로 식민사관 논쟁을 하는 것도 실은 일본의 침략사관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반면 역사의 해석을 독점하려는 학문 권력은 과거 조선시대의 사문난적(斯文亂賊)론과 다름없다.

많은 사람의 공통된 기억은 가까운 과거의 사실을 입증한다. 기록은 더 오랜 과거의 사실을 전달해 준다. 과거 사실에 대한 기억과 기록이 융합돼 역사로 계승된다. 그러나 어떤 사실이나 역사 해석에 대한 반론이 허용되지 않거나 믿도록 강요된다면 그것은 신성불가침의 역사 신화로 굳어진다. 그런 신화는 북한, 일본과 중국, 한국에도 있고, 한·일 역사 논쟁에도 존재한다. 역사 신화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역사학도 개방적이고 민주주의적이어야 한다.

개방된 역사관은 역사 사료뿐 아니라 언어학, 인류학, 사회학, 문학 등 인문학을 아우르는 폭넓은 학제 간 연구를 요구한다. 그래야만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라는 말을 들어도 흥분하지 않고 자신 있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역사학은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미래사회에서 역사가 어떤 의미가 될지에 대해서도 대답해야 한다. 나아가 역사학은 대중에게 좀더 친밀해지고 어린 학생들의 호기심과 꿈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역사학은 인문학의 핵심이고, 역사학자들은 더 넓은 학문적 섭렵이 필요한 것이다. 역사 갈등 문제는 대통령이나 외교관에게 미룰 일이 아니다.
2017-08-28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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