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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면 인적 끊겼던 청와대 앞길, 왜 반세기 동안 닫혀 있었나

밤이면 인적 끊겼던 청와대 앞길, 왜 반세기 동안 닫혀 있었나

입력 2017-06-22 16:03
업데이트 2017-06-22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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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김신조 사건’ 후 경호 강화…일반인 통행금지

청와대가 50년 만에 전면적으로 개방하는 청와대 앞길은 남북 분단의 현대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소였다.

종로구 효자동 효자 삼거리에서 팔판동 팔판 삼거리까지 청와대 앞길은 현재 낮에만 통행이 가능하다.

오후 8시부터 다음 날 아침 5시 30분(동절기 6시)까지는 바리케이드가 쳐져 통행이 불가능하다.

청와대 앞길이 반세기 가까이 활짝 열리지 못한 이유는 1968년에 발생한 ‘김신조 사건’ 때문이다.

‘김신조 사건’은 그해 1월 21일 북한군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해 박정희 전 대통령을 해하려고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했다가 경찰의 불심검문에 걸려 미수에 그친 사건이다.

이 일이 있은 후로 같은 해 3월부터 대간첩 작전 계획을 재조정하고 대통령 경호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인왕산과 북악산, 청와대 앞길까지 일반인의 통행이 금지되기에 이른다.

경비가 삼엄해지면서 인근 주민들의 불만이 제기되자 88년 2월 노태우 전 대통령은 권위주의를 청산하는 상징적 조처의 하나로 효자동∼궁정동, 삼청동∼팔판동 구간의 도보 통행을 허용하고 청와대 경내 관광을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그러나 이 조처도 시간이 지나면서 검문검색과 경비 수준이 올라가면서 개방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는 비판이 나왔다.

청와대 앞길의 통행이 현재 수준으로 일부가 개방된 것은 93년 2월 25일이다.

이날부터 신교삼거리와 팔판로, 효자로 입구 등을 가로막고 있던 바리케이드가 철거되며 시민의 통행이 가능해졌다.

석달 뒤인 5월부터는 인왕산도 시민에게 개방됐다.

‘문민정부’를 자처한 김영삼 정부가 ‘문민화’의 조처 중 하나로 단행한 것이다.

다만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아침 5시 30분까지 통행이 불가능했던 것은 지금과 마찬가지였다.

청와대 앞길이 50년 만에 개방되면서 ‘김신조 사건’의 이후 삼엄한 경비 속에 폐쇄적인 권위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공간들도 대부분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김신조가 침투한 루트 중 한 곳이었던 북한산은 그 일부가 2006년 4월에 개방되기 시작한 데 이어 통제돼왔던 산책코스까지 순차적으로 모두 개방된 바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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