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공직사회, 도리어 지금이 기회다/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입력 : ㅣ 수정 : 2016-11-3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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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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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

최순실 등의 국정 농단이 발각된 이후 공직사회의 분위기는 참담한 수준이다. 공직사회 전반에 미친 충격으로 ‘집단 무력감’이 유령처럼 퍼져 나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대체 지금까지 우리가 누구를 위해, 또 무엇을 위해 존재한 것이냐”는 자괴감뿐 아니라 현 정부의 임기조차 불확실한 상황에서 본인이 어떠한 행위를 해도 정치적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성향을 더욱 부채질하는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을 좀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이성적으로 판단해 보면 요즘과 같은 상황이 공직자들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국정 농단의 주역들이 수면 아래에서 아직도 공직사회를 계속 썩어 가게 하고 있다면 아찔하지 않은가. 현재의 국정 정상화 과정은 오히려 공직자들이 관계 법령에 따라 수행하는 각종 정책이 더욱 타당하게, 부당한 정치 권력의 영향에서 벗어나 오직 국민만을 위해 집행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지금까지 청와대가 행정 각부에 지나치게 많은 간섭과 개입을 한 것에 대한 문제점이 이번 사태를 통해 그대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이번 사태를 계기로 행정 각부는 오히려 청와대 등의 정치적 영향력에서 벗어나 대한민국 공무원 조직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공직자들은 ‘근무 의욕의 감퇴’보다는 ‘부당한 정치 권력의 진공 상태’라는 기회를 잘 활용해 진취적으로 ‘공무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고민해야 한다. 광화문광장에서 보여 준 시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세계를 놀라게 했듯이 정치 권력 공백의 위기에서 우리 공직자들의 뛰어난 역량이 국정 공백을 메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제까지 모호한 법령을 기반으로 하여 막대한 ‘권한’을 행사했지만 ‘책임’은 별로 부담하지 않았던 정치권 및 대통령 비서실의 압박은 많이 사라지고 있다. 더불어 어떤 방식으로든 법의 회색 지대에 자리 잡으면서 부조리를 저질러 온 정치 세력들에 대한 개혁 작업은 지속될 것이다. 앞으로의 개혁은 논외로 하더라도 지금이야말로 각 부처가 부처의 존재 이유와 정체성, 중장기 전략을 재확인해 부처 고유의 정책을 추진할 적기라는 점은 누구나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차기 정부의 대통령 비서실은 각 부처의 업무 지휘나 감독 기능 수행보다는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서 전략기획 기능 수행 위주로 재편돼야 할 것이다. 즉 행정 각부의 역량을 최대한 고양하면서도 동시에 부처 간 최적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 이렇게 대통령 비서실의 기능을 대폭 축소해 비서실이 더이상 행정 각부의 옥상옥(屋上屋)이 되지 못하게 하면 국회 동의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에 관해 행정 각부를 통할하고, 헌법 규정대로 국무총리와 국무위원들이 행정부의 중심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지금부터 최소한 내년 상반기까지의 기간은 행정 각부 스스로 국정의 중심 역할을 준비한다고 볼 수 있고, 각 부처에서 시행할 정책은 그 부처의 비전과 역량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시험대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어느 부처가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조직 운영의 방향성을 제대로 설정하지 못했을 때 ‘대선공약’이나 ‘VIP(대통령)의 뜻’을 우선해 시행하다 보니 정작 부처 고유의 업무는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다. 각 부처의 비전과 방향성은 국민투표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 및 집권 세력에 엄청난 영향을 받기 때문에 대선공약이나 국정 운영에 관한 비전에 중앙 부처가 따라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지금까지의 현실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국정 공백기에는 ‘윗선 공백’의 기간이 될지언정 다수 공무원의 ‘업무 공백’ 기간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많이 흘러 지금의 정치적 혼란기를 돌아보았더니 나라의 지붕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을 때, 기둥과 주춧돌을 붙잡고 집이 무너지지 않게 버티며, 국정 각 분야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이들이 바로 우리의 공직자였다는 평가가 있기를 바란다.
2016-12-0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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