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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가 쓴 역사’ 근대사의 시작 인천항 월미도

‘항구가 쓴 역사’ 근대사의 시작 인천항 월미도

손원천 기자
손원천 기자
입력 2016-10-12 17:50
업데이트 2016-10-13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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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월도 여정의 날머리인 인천항 주변에 둘러볼 곳이 많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흥행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월미도가 지척이고, 맛집들이 몰려 있는 인천 차이나타운, 근대화의 흔적이 오롯한 중구 ‘개항장 문화지구’ 등도 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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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역 맞은편의 차이나타운 초입에 세워진 패루(중국식 전통 대문). ‘중화가´(中華街)라고 적힌 현판이 인상적이다. 문을 지나면 화려한 색감의 중국풍 건물이 이어진다.
인천역 맞은편의 차이나타운 초입에 세워진 패루(중국식 전통 대문). ‘중화가´(中華街)라고 적힌 현판이 인상적이다. 문을 지나면 화려한 색감의 중국풍 건물이 이어진다.
월미도는 1980년대 이후 인천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떠오른 곳이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가까운 데다 바다와 접해 있어 추억을 곱씹으려는 ‘옛 청춘’과 ‘현재진행형 청춘’들이 고루 즐겨 찾는다. 2001년에 문화의 거리가 조성되면서 좀더 화려해지고 세련돼졌다. 대관람차가 쉴새 없이 돌아가고 여기저기서 쏘아올린 폭죽은 검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인다.

●인천상륙작전 최초로 전개된 월미도

월미도는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이 최초로 전개된 곳이기도 하다. 당시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연합군은 지금의 월미도(그린비치)와 북성동(레드비치), 용현동(블루비치) 등 3개 지점을 중심으로 작전 계획을 수립하는데, 이 가운데 ‘그린비치’가 제1단계 작전지였다. 이어 1950년 9월 15일 연합군이 그린비치를 통해 상륙에 성공했고, 약 2주 뒤인 28일 서울 수복에 이어 전세 반전의 계기가 마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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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공원 초입의 ´그날을 기억하는 나무´. 수천 발의 포화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월미공원 초입의 ´그날을 기억하는 나무´. 수천 발의 포화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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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미산(105m) 정상 바로 아래 있는 전망대. 월미산은 한국전쟁 이후 약 50년간 미군이 주둔하다 2001년 일반에 개방됐다.
월미산(105m) 정상 바로 아래 있는 전망대. 월미산은 한국전쟁 이후 약 50년간 미군이 주둔하다 2001년 일반에 개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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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월미도엔 적잖은 변화가 이어졌다. 무엇보다 월미산 개방이 반갑다. 한국전쟁 이후 약 50년간 미군부대가 주둔한 탓에 출입이 통제되다 2001년 일반에 문을 열었다. 월미산 일대는 월미공원으로 조성됐다. 산을 에둘러 둘레길도 조성됐다. 2009년 ‘수도권 걷기 좋은 산책코스 베스트 20’에 선정된 길이다.

둘레길 곳곳엔 ‘평화의 나무’가 서 있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월미도에 떨어졌던 수천 발의 포탄과 총탄을 견딘 나무들이다. 둘레길 들머리의 ‘그날을 기억하는 나무’와 240여년을 살아온 ‘평화의 어머니 나무’ 등 모두 일곱 그루다. 월미산 정상 못 미친 곳에 전망대가 조성돼 있다. 25m 높이의 철골구조 위에 유리를 덧씌운 형태다. 전망대 맨 위층에 서면 인천항, 인천공항, 송도국제도시, 인천대교 등 사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경관조명이 불을 밝히는 밤엔 전망대 자체가 볼거리 노릇을 한다. 월미달빛마루 카페에선 파노라마 전망과 함께 음료를 즐길 수 있다.

중구 쪽에도 인천상륙작전 관련 볼거리들이 몇 곳 있다. 자유공원엔 맥아더 장군을 기리는 동상이 있다. 자유공원은 1888년에 조성된 서구식 근대공원이다. 광복 직후 만국공원으로 불리다기 1957년 맥아더 장군 동상이 세워지며 자유공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월미도 입구부터 동상에 이르는 길은 인천상륙작전의 역사적 의미를 기리기 위해 ‘맥아더 길’로 명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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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짜장면의 발상지인 공화춘 ´유니짜장´.
우리나라 짜장면의 발상지인 공화춘 ´유니짜장´.
●차이나타운·일본 조계지의 공존

인천역 맞은편은 차이나타운이다. 초입에 세워진 패루(중국식 전통 대문)를 지나면 화려한 색감의 중국풍 건물이 이어진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1883년 인천항이 개항되고 1884년 이 일대가 청의 치외법권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생겼다. 예전에는 중국에서 수입된 물품들을 파는 상점들이 많았으나 지금은 공화춘, 중화루 등 거의가 중국 음식점이다. 여기에 토산품, 의상, 제과 등을 파는 가게들이 드문드문 혼재돼 있다.

음식점 밀집 지역에서 화교학교 쪽으로 올라가면 길이 150m에 달하는 ‘삼국지 벽화’가 벽면에 펼쳐져 있다. 삼국지의 명장면을 해설과 함께 총 160장면의 그림으로 표현해 놨다.

화교학교를 지나 내리막길을 따라 걷다 보면 조계 경계석이 나온다. 이 조계 경계석을 경계로 왼쪽은 청나라, 오른쪽은 일본 조계지였다. 조계지는 개항도시에 있던 외국인 거주지로, 일종의 치외법권 지역이었다. 경계석에서 일본 조계지 쪽으로 들어서면 일본풍의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가 나온다. 이른바 ‘개항장 거리’다. 옛 ‘일본제1은행’, ‘일본18은행’, ‘일본58은행’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이 중 일본제1은행은 인천 개항박물관으로 변신했고, 일본18은행 건물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으로 재개관했다. 개항장 거리 가운데 있는 중구청 건물은 옛 일본영사관 자리다.

홍예문(인천유형문화재 49호)은 인천 중앙동 등에 밀집된 일본인 거주 지역을 만석동까지 늘리기 위해 일본 공병대가 뚫었다. 인천의 구도심 항구 지역과 동인천을 연결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홍예문 아래는 차 두 대가 겨우 지날 만큼 좁다. 오르막길을 오르는 수고를 피하려는 사람들도 종종 이용한다. 문 위에 서면 인천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홍예문을 넘어서면 오른쪽으로 삼치거리, 동화마을 등이 이어진다. 이 밖에 서양식과 일본식을 섞어 화강암으로 만든 인천우체국(현재 인천 중동우체국), 1897년 고딕 양식으로 건축됐다가 1937년 외곽을 벽돌로 쌓아 변형한 답동성당 등도 개항장 거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인천개항장 밤마실 축제 등 열려

서울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인천역에 내리면 바로 앞이 차이나타운이다. 공영주차장이 있지만 주말이면 붐비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편리할 수 있다.

인천시에서 주최하는 인천 개항장 밤마실 축제가 오는 15일까지 이어진다. 중구 개항장 문화지구의 여러 문화재를 밤에 즐길 수 있는 행사다. 100년 전 창고를 예술촌으로 단장한 인천아트플랫폼, 옛 일본 58은행 등의 개장 시간이 오후 10시까지 늦춰진다. 특히 14, 15일엔 미디어 파사드(건물 외벽에 영상을 투영하는 기법)를 활용한 영상쇼, 버스킹 공연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수은등 모양의 가로등 켜진 옛길을 천천히 걷기만 해도 그윽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글 사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2016-10-1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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