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열의 메디컬 IT] 전자 차트 유감

입력 : ㅣ 수정 : 2016-10-10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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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열 경희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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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열 경희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현대 병원에서 전산은 매우 중요한 시스템이다. 전산은 물류관리, 수납, 보험청구 등 진료 보조 영역을 벗어나 실제 환자의 진료, 처방, 검사 등 각종 의료행위, 각종 정보를 기록·보관하는 중요한 데이터베이스로 계속 진화하고 있다. 정보기술(IT) 강국인 우리나라에서 의무기록과 처방에 대한 전산 시스템 보급률은 이미 2000년대 중반 거의 100%에 도달했다. 필자가 근무하는 병원을 포함, 국내외 주요 병원에서 전자 처방 관리 시스템이 도입된 지는 10년도 넘은 과거의 일이다.

꽤 오래전에 보급됐음에도 이런 시스템에 대한 중요성은 최근 더욱 강조되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빅데이터’ 때문이다. 대용량 데이터의 분석 기법이 향상되고 대중화되면서 병원에 저장·보관된 각종 임상정보가 연구를 위한 중요한 자료원으로 주목받게 됐다. 이전에는 기획하기 어려웠던 대규모 연구가 가능해졌으며, 최근에는 일개 병원을 넘어 다기관 또는 다국가 차원의 데이터 연계 분석이 시도되고 있다. 이런 흐름은 분명 긍정적인 것이며, 앞으로 의학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필자의 연구 활동에도 이미 직간접으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가끔 전산이 진료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시절이 그립다. 진료의 대상인 사람 자체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수기 차트 시절, 내과 병동의 회진에서는 교수와 전공의가 서로 얼굴을 보며 대화하는 광경이 일상적이었다. 환자의 상태와 중요한 검사는 종이 차트에 정리했고 그 기록을 두고 얼굴을 맞대며 토의했다. 외래 역시 마찬가지여서 진료 교수들은 환자의 얼굴을 직접 바라보며 진료했고, 그 결과가 차트에 기록됐다. 필자는 각 의사 특유의 필체, 특히 노 교수의 멋스러운 만년필 필체를 무척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일부 악필인 교수의 기록을 이해하지 못해 여러 의료진과 함께 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고생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하지만 병원 전산이 발전하면서 병동이나 외래에서 사람끼리 얼굴을 마주 보며 이야기하는 일은 많이 줄었다. 환자나 의료진이나 서로 얼굴보다 컴퓨터 화면을 보고 이야기하게 된 것이다. 전자 의무기록 사용 후 의사가 환자에 집중하는 시간은 유의미하게 감소했고, 이에 따라 진료에 대한 환자와 의사의 만족도가 수기 차트 시절에 비해 오히려 감소했다.

사실 전자 의무기록의 유용성은 이전 종이 차트에 비해 일일이 거론할 필요가 없을 만큼 탁월하다. 전산화를 통해 방대한 의무기록을 이전에 비해 손쉽게 유지, 보관할 수 있으며 간단한 조작으로 재열람이 가능하다. 일부 단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전 종이 차트의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게 되리라는 건 확실하다. 다만, 사용자 관점에서 현재의 전자 의무기록 시스템은 분명 과도기적인 것으로 개선의 여지가 상당하다. 앞으로 현재의 기술적 어려움을 극복한 좀 더 만족스러운 시스템이 도입되기를 희망한다.

가끔 병원에서 전산 오류가 생기기도 한다. 매우 드물고 준비된 매뉴얼에 따라 신속히 조치돼 진료상 문제는 거의 없지만 수기로 처방을 내 본 적 없는 신참 의사들은 당황하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는 다행히 수기 처방 경험이 있는 마지막 세대인지라 이런 사고에도 썩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전자 차트가 환자와 의사 간 의료 행위의 본질적 요소가 아님을 잘 알고 있기에 전산에 다소 장애가 있더라도 오히려 사람 그 자체에 좀 더 집중해 진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힘들었지만 좀 더 인간적이던 옛 시절을 그리워하며.

경희대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2016-10-11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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