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책 읽는 도시/최광숙 논설위원

[씨줄날줄] 책 읽는 도시/최광숙 논설위원

최광숙 기자
최광숙 기자
입력 2016-09-08 23:04
업데이트 2016-09-09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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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것들을 다 파는 대형마트에도 없는 물건. 하지만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키워 주는 물건. 다름 아닌 헌책이다. 네덜란드와 독일 접경지대에 있는 작은 마을 브레이더포르트에는 오래된 헌책들을 파는 책방들이 많다. 세월과 역사의 향취를 담은 헌책들을 사기 위해 인근 주민들은 물론 국경을 넘어오는 독일인도 있을 정도로 인기다.

유럽에는 헌책을 파는 크고 작은 책 마을이 곳곳에 있다. 그 원조는 바로 영국 웨일스 지방의 헤이온와이 마을이다. 헤이라는 마을 옆에 와이라는 강이 흐른다 해서 이름 붙여진 헤이온와이는 50년 전만 해도 쇠락한 폐광촌에 불과했다. 이 마을 출신인 옥스퍼드대를 나온 청년 리처드 부스가 동네 낡은 소방서 건물을 사들여 헌책방을 열면서 이 마을은 지금 전 세계에서 연간 5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책의 왕국’이 됐다. 청년 부스는 그사이 할아버지가 됐고, ‘책의 왕’으로 등극했다.

그의 책 사랑이 관광산업의 한 모델로 성공하면서 우리나라 각 지자체도 앞다퉈 책 마을을 조성하는 추세다. 파주 헤이리 마을 역시 헤이온와이 마을을 벤치마킹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파주는 이제 출판도시이자 예술도시로 널리 알려지면서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도시로 자리를 잡았다.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났던 전북 완주군 삼례읍도 최근 책마을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완주군의 제안으로 고서점을 운영하던 박대헌씨가 과거 양식 창고이던 이 마을의 한 건물 등 3곳에 고서점을 비롯해 도서 10여만권을 갖춘 헌책방, 책 박물관, 책 갤러리 등을 열었다. 완주군은 건물과 부지, 사업비 등을 지원했다. 내년 4월 영국 빅토리아 그림책 거장인 ‘케이트 그린어웨이전’이 열릴 예정이다.

율곡 이이와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쓴 매월당 김시습의 고향인 강원도 강릉은 예전부터 문향(文鄕)으로 유명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조선 중종)은 “강릉의 자제들은 어려서부터 책을 끼고 스승을 따라 글을 배우는데, 글 읽는 소리가 골골이 가득 찼다”고 썼다. 소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은 고향인 이곳에 최초의 사립도서관인 ‘호서장각’을 짓기도 했다. 그는 “내가 경포의 별장으로 나아가 누각 하나를 비우고서, 이 책들을 간직했다. 고을의 선비들이 빌려 읽고 싶으면 읽게 하고 마치면 도로 간직하게 했다”고 적었다.(호서장서각기)

문학 도시로서의 역사적 유산을 이어받아 강릉은 2006년부터 걸어서 10분 이내 도서관 조성을 목표로 한 덕분에 99개의 도서관이 있는 그야말로 ‘책 읽는 도시’가 됐다. 이곳에서 9~11일 ‘2016 대한민국 독서대전’이 열린다고 한다. 초가을에 솔향 가득한 경포 해변 등지에서 벌어지는 북콘서트, 노벨문학상 작가전, 문학심포지엄 등 책 페스티벌이 독서 애호가들을 기다리고 있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2016-09-0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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